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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an 05. 2024

까맣고 쪼끄만 전갈이..

집에서 전갈을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쓰레기는 가능한 한 집안에 두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벌레가 꼬이기 쉽기 때문이다.


어젯밤 늦은 저녁을 먹고 생긴 쓰레기를 뭉쳐서 버리려 현관문을 열었다. 문 입구 쪽 바닥을 보니 무언가 까만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인도네시아 주택에 살다 보니 벌레로 추정되는 것들은 모조리 매의 눈으로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요즘 바람 때문에 작은 낙엽이 더러 떨어지기도 하니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자세히 본다. <전갈> 모양을 하고 있다.


소름이 돋았다. 한 눈이라도 파는 사이 시야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 너무 불안하고 찝찝해지니 눈을 뗄 수가 없어 시선은 전갈 같은 물체에 고정시키고 아이를 불렀다.


물체모양에 놀란 아이가 폰으로 사진을 찍고 구글링 한다.

<전갈>이 맞다. 어쩌나.. 파리채로라도 때려잡아야 되겠는데  너무 벽 쪽에 딱 붙어있어 파리채로는 어렵다 싶다. 행여 놓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 짧은 시간 동안 현명한 판단을 해야 했으나 머리가 그다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어두운 상태에선 더 공포스러워 어찌하기가 너무 무섭다. 벌레 죽이는 약이라도 써봐야겠다 싶다.

현관입구에 보관해 둔 벌레약을 집어 전갈을 향해 한컷 뿌린다. 전갈이 조금 움츠리는 모습이 보인다. 무섭지만 좀 더 뿌린다.

전갈을 지나치고 나아갈 수 없어 쓰레기 버리는 건 포기다. 일단 후퇴다.


현관문 입구는 전갈이 들어올 틈이 없어 다행이다 생각하며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그러고 보니 난 전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다시 구글링 해본다. 내가 본 전갈은 다행히도 독성이 강한 종류는 아닌듯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한다.


동이 튼다. 새벽에 함께 걷기로 한 약속 때문에 조금 어둑했지만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밀었다. 역시나 벌레약은 효과가 없었다. 어제의 위치에서 반대편인 자전거를 세워둔 쪽으로 자리를 옮겨 있다.


자는 아이를 두고 가려니 영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할 수 없다. 툭툭한 운동화를 신고 있으니 밟아보자. 바퀴벌레 새끼도 못 잡던 내가 <전갈>을 내가 직접 밟아 죽이겠다는 엄청난 마음을 먹는다.


약속시간이 바쁘니 <에라 모르겠다> 싶다. 마음 크게 먹고 밟는다. <뿌지직>으윽.. 두꺼운 신발창을 통해 으깨지는 전갈의 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가 전갈을 의도적으로 밟다니..


혹시 몰라 밟힌 전갈을 대문밖으로 쓸어버린다.

벌레공포증이 있던 내가 <엄마>가 되니 내 아이 걱정에 아주 대담해진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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