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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Nov 03. 2024

징그럽던 애벌레에게 애정이 생겼다

잘 자라서 날아보렴

한국의 아파트 생활과 달리 이곳 인도네시아에선 주택단지에 살고 있어 앞, 뒤로 뜰이 조금 있다.

하도 풀이 잘 자라서 딱딱한 시멘트로 다 덮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식물들이나 관찰해 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그냥 두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귤에 씨앗이 있는데 이 씨앗도 싹을 틔울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뒤뜰 흙을 모종삽으로 뒤집어 씨앗을 심을 정도까지의 부지런함은 없어 그냥 무심하게 흙위로 몇 개 던져 놓았다.

근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온다. 참 이뻤다. 어린것은 그 어떤 것도 너무나 이쁜가보다.

매일 귤나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생겼다. 하지만 한 일주일 바쁜 일이 생겨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다 다시 들여다보니 이게 웬일인가..


파릇파릇하던 어린 귤 이파리들이 하나같이 다 뜯겨 사라져 버리고 앙상하고 여린 줄기만 남아있는 게 아닌가.

너무 화가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애벌레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나비가 내 귤나무에 알을 낳고 간 게 분명했다. 괘씸한지고..

장갑을 끼고 분노의 손놀림으로 그 악당 애벌레들을 모두 잡아 봉지에 담아 해치워버렸다.

그렇게 나비와의 신경전을 몇차례 더 겪고 나서야 마침내 새싹은 어느새 제법 청소년의 모습을 갖추었고 나비 따위의 공격에 끄떡도 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됐다.


어쩌다 대충 봐도 이젠 이파리가 튼튼해서 그런지 나비 애벌레의 공격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더 자세히 한 잎 한 잎 관찰하니 조그만 애벌레가 또다시 등장했다. 까맣고 오렌지 색이 조화스럽게 섞인 아주 작은 애벌레인데, 나무가 이미 자라서 그런지 갑자기 저 작은 생명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난 곤충혐오가 인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작가 <한 강>의 인간본성을 들여다보는 소설들을 깊이 읽어서 그런 건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냥 문득 저 작은 나비의 몸에서 나온 알이 부화해서 쪼꼬미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 애벌레가 불쌍해졌다.

<귤나무야, 이제 넌 제법 튼튼하게 자랐으니 많이 다치게 하진 않을 거야.. 너의 작은 이파리를 조금만 나눠줘도 괜찮지 않을까? 애벌레가 너무 불쌍해서... 미안해..>
혼잣말로 속삭이고 귤나무의 허락을 받았다고 믿고 애벌레를 그냥 두기로 했다.

그 조그맣던 몸이 어느새 제법 커졌다. 이젠 새들이 걱정되었다. 종종 우리 집 뒤뜰에 놀러 오는데 눈에 띄어 그 뾰족한 부리로 잡아가면 어쩌나..

이 놈의 걱정은 끝이 없다


오늘 아침에 살펴보니 애벌레가 안 보인다. 어쩌나.. 새들이 물고 가버린 건 아닐까.. 이파리 하나하나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휴.. 이파리 위에서 세로로 서있는 단단한 줄기로 옮겨 보호색을 하고 제법 잘 숨어있다. 눈동자가 새까만 게 신기하다. 저 어린 생명이 저렇게 혼자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대견하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지만 응원은 보낼게. 꼭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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