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ssy Nov 08. 2024

엄마와 딸

어른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닌 아이.. 어렵다.

난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왜?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스스로가 도태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사한 동네에서 살기 시작한 건 4년이 좀 넘어가고 전과 달리 영어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그나마 지금 오는 아이들도 다음 달쯤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 곧 백수가 될 예정이다.


괜스레 내 하루를 더 바쁘게 만들어야 되겠다는 스스로 주는 압박감으로 <비파>라는 인도네시아어 수업을 주 2회 듣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인도네시아어 실력보다 한참 내린 2급을 신청했는데도 너무 벅차고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수업시간은 내가 정할 수 있는데 다른 스케줄에 지장 받지 않고 편하게 하려고 화. 목 저녁시간대(저녁 7시부터 저녁 9시)로 잡았다.


집안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다 보니 새벽 5시부터 시작해도 하루가 길지 않다.


우기라 그런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난다. 작은 아이가 오기 전에 집안일 마치고 먹을 간식도 챙긴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예습도 해야 하니 6시까지 모든 일을 마치고 부엌문을 닫았다.


이제 책 좀 펴서 예습을 해보려는데 작은 아이가 방에서 나온다. 식탁의 라임을 보더니

"라임을 넣어 먹으려면 뭘 먹으면 좋을까.."


집안일을 이제야 대충 마쳤다는 마음도 있었고 왓츠앱을 이용해 선생님께 영어로 문자를 남기는 중이었기도 했고 예습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머릿속이 꽤나 부산해 있던 터라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을 했다.


"이제 엄만 부엌일 끝났고 오늘은 해 놓은 거 대충 먹어. 곧 수업도 있어서 다른 건 못해."

"난 그럼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설거지하기 귀찮아. 그냥 있는 거 먹어. 엄마도 힘들어."


내 말이 거슬렸나 보다. 참.. 생리 중일 때 예민해지는 편이라 조심했어야 했는데 내 코가 석자이다 보니 간과했나 보다.


"내가 설거지할게! 저녁도 안 줘놓고 말을 왜 그렇게 해?"

아이의 말이 날카로워졌다. 다음날 시험도 있어서 더 예민해진 건지.. 둘째는 한번 틀어지면 자기 성질을 자신이 이기지 못하는 편이다.


엄마랑 한 공간에 있기 싫다며 올라가 버린다.

나도 억울했다. 여태 자기만 챙기다 공부도 못했고 먹을 것도 챙겨놓고 이제 공부 좀 하겠다고 앉아서 책 열고 동시에 아이 선생님께 문자 보내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저런다고?


뭐가 잘못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와중에 기계치인 엄마는 불쌍했는지 수업들을 줌링 크는 보내왔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수업 듣고 중간 쉬는 시간에 올라가 보니 울다 잠들어있다.


나도 사과를 잘 못하는 성격인데 이 사태를 어쩌랴..

"미안해. 엄마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굳이 또 이 말을 덧붙였다 하하) 미안하고. 너 생리 중이고 시험도 있는데 엄마도 피곤해서 그랬어. 미안하니까 내려와서 공부해.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해줄 테니까. 미안해."


한번 토라지면 꽤나 되돌리기 힘든 아이여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다행히 내려왔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엄마가 잘하지 않는 사과를 하니 본인도 좀 미안해졌는지 애교를 부린다.


아이고.. 이렇게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서야.. 그래도 또 품 안에 자식이라고 떠나고 나면 그리워지겠지?


간혹 생각한다. 그릇도 안 되는 내가 자식을 낳고 키우다니.. 그릇이 안되니 그릇이 되라고 내게 자식들을 주신건지. 신의 섭리는 오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