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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22. 2022

제트기류 세 개가 만들어지는 걸 보다

작은 아이 도시락을 싸야 해서 새벽 운동이 어려워진 나는 그래도 최소한 하루 30분은 걷기 운동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오늘도 5시쯤 일어나서 화장실을 잠시 다녀오고 서둘러 나갔다. 5시 20분인데 벌써 환하다. 인도네시아는 보통 5시 30분에 해가 뜨는데 계절(?)에 따라 10~20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우리 단지 밖으로 나가기엔 아직 두려움이 있어서 그냥 단지 내를 걷기 시작한다.


아직 단지 내 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한 바퀴를 돌았다. 하늘이 너무 파랗다. 파란 하늘에 작아진 초승달만 하나 달랑 있다. 요즘 오후에 한 차례씩 비가 온다. 그래서인지 하늘에 늘 구름이 가득했는데 오늘은 비가 오지 않으려나.. 작은 원을 그리며 돌다 보니 8분 정도면 한 바퀴는 금방이다. 두 바퀴째 처음 시작했던 지점에서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아까 보지 못했던 하얗고 긴 선이 선명하게 하늘을 쪼개 놓고 있다. 깜짝 놀랐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저게 어디서 생겼을까 궁금하고 신기했다. 사진을 또 찍었다. 걷는 동안 그 하얗고 긴 선을 점점 옆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모양이 계속 변한다. 마치 분필을 옆으로 눕혀 진초록색 칠판에 드르륵 소리 내며 선을 그렸던 학창 시절을 떠 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다시 8분 여가 더 지냐고 세 바퀴째, 또 처음 지점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이게 뭐지? 넓게 퍼져가는 긴 흰색 줄 옆에 또 새로운 하나의 하얗고 긴 직선이 생겨있다. 너무 신기해서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하늘을 보니 지금 새로 생긴 직선은 점점 길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동영상을 찍었다. 너무 높은 고도로 날아서 그런지 소리는 전혀 나지 않지만 분명히 직선의 끝에 불빛이 약하게 보인다.

내가 지금 제트기류가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UFO가 나에게 싸인이라도 주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신비한 모습이다. 초승달만 하나 있는 새파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어떤 비행 물체가 지금 하얀 선을 두 번째 그려가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러다 흰색 선은 끝을 보였고 나는 다시 걷는다.

다시 8분 여가 또 지나고 네 바퀴를 시작하려는 찰나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거의 같은 방향으로 세 번째 하얀 제트기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나도 놀라운데 지금 내가 세 개의 제트기류를 보고 있는 거라고? 신비롭고 가슴이 벅차다. 구름도 없었는데 어디서 하얀색을 만들어 하늘에 낙서를 하고 있는 걸까? 설마 비행기에서 내뿜는 매연 같은 건 아니겠지?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서 손을 바삐 움직이며 부산을 떨었다. 마음이 바쁘다. 6시 40분까지는 준비를 마쳐야 하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깡꿍을 볶고, 달걀지단을 만들고, 밥에 양념을 했다. 아침에 아이가 먹을 것도 조금 준비하니 벌써 45분이 넘어간다.


그래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학교 가려고 나서는 아이에게 오늘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이도 신기해한다. 아침을 일찍 여니 나에게도 이런 신비한 체험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 게 너무 기뻤다. 아이는 자기도 신기했는지 제트기류가 생기는 원인에 대한 설명을 구글링 해서 보내줬다.


내일 또 어떤 신비한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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