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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28. 2022

사춘기 딸아이와 한 공간에서 살아남기

요즘 작은 아이가 부쩍 사춘기임을 드러내는 날이 잦아졌다. 나도 중년이라 생각도 많고 몸도 마음도 힘든데 아이와 부딪히기까지 하려니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큰 아이는 공부는 하기는 싫어했어도 밥 준비는 돕는 편이었는데 작은 아이는 밥 준비도 돕지 않는다. 칼도 무섭고 불도 무섭다나. 너무 얄미워 밥 준비를 하지 않으면 자기도 그냥 대충 냉장고 뒤져보고 허기만 때우는 정도로 넘어간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못 본척하고 나도 내할일이나 했다. 서로 최대한 부딪히지 않게 피하면서.


그러다 어제 자고 있는 아이 방을 정리하다 휴대폰에 떠있는 알람을 보게 되었다. 오픈 채팅 알람이다. 청소년 상담소 라나..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와 대립각을 세우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아이가 많이 힘들었을까.


다시 한번 나의 사춘기 시절을 떠 올려봤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집이 너무 싫고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었고 그리 큰 일탈은 아니지만 엄마가 잘 아는 가족 집에 허락도 받지 않고 가서 자고 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디 갔을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그 집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딸 위치 추적 완료를 알리는 대화가 들려왔다.


나는 그렇게 너무 답답할 땐 그 친구 집에라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해외에 살고 있는 작은 아이는 어디 피신할 만한 장소가 전혀 없다. 오직 온라인 세계뿐. 근데 난 그게 너무 싫은 거다. 폰만 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한심해 보이는 거다.


그런데 청소년 상담 오픈 채팅에 접속했다는 걸 알고 나니 내가 얼마나 철이 없는 엄마였는지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청소년을 가르쳐왔고 아이들이 부모와 겪는 갈등을 제3자 입장에서 많이 지켜 봐 왔는데 이렇게 당사자가 되니 엉망이 돼버린 거다. 이성은 다 어딜 가버린 건지.


어느 할머니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손주에게 "에고.. 크느라 고생한다.."라고 하셨다는 말이 떠 오른다. 그래. 지금 자기도 크느라 고생 중인데 내가 그것도 몰라주고 아이를 너무 몰아붙인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에 오늘은 아이가 좋아하는 야채 듬뿍 비빔면에 삼겹살이다. 맛나게 먹고 힘내라. 엄마가 좀 더 공부를 하고 조금이라도 덜 힘든 너의 사춘기를 위해 노력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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