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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l 19. 2022

우영우 신드롬

조카의 발달 장애

한국을 떠난 지 벌써 7년 넘어 8년 째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영어 공부방을 했기에 근처 사는 조카들도 모두 내 몫이었다. 내 아이를 포함한 학생들과 조카들까지 떠맡아야 했던 나의 삶은 늘 바쁘고 식사를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올케언니는 조울증이다. 약을 먹은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간다. 조울증.. 너무 들뜨거나 너무 가라앉거나 중간이 없다. 그래도 일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지. 일하면서는 에너지를 모두 모아 소진하고 집에 오면 교회를 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세 아이중 둘은 이미 대학생이 되었고 조울증 진단받는 시기에 임신된 막내는 이제 중학교 1학년이다. 그리고 카톡 자기소개란 같은 곳에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를 적어두고 있다. 우영우를 보면서 조카와 닮아 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한다.


지난 3월,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고 막내 조카를 만났다. 키가 173은 돼 보였다. 언제 저렇게 자랐는지. 아이는 수업 마치고 바로 학원을 향한다. 벌써 6년 넘어 7년째 접어든다. 영어 숙제를 하고 있기에 슬쩍 보니 그냥 다 찍는다. 쉬운 단어도 하나 읽지 못했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내 아이도 벅찬데 또다시 조카를 떠안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요즘처럼 온라인도 잘 되어있는데 경제 사정도 좋지 않은 오빠네를 도와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정 엄마께 슬쩍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다음날 바로 올케언니 전화가 왔다.

"고모! 저희 막내 공부 도와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면서요?"

"아.. 네.. 지금 한국 있는 동안은 일정이 너무 빠듯해 어렵고요. 인도네시아 돌아가면 한 번 해보죠 뭐."

"고모, 감사합니다." 살짝 우영우 톤으로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울 엄마, 참 액션 빠르네 싶다.


그러고 한 달쯤 머물고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여기서도 집안일에 살려면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이 있기에 깜빡하고 있었는데 올케언니가 시켰는지 조카가 카톡을 보내왔다.

"고모, 언제부터, 몇 시부터 수업 가능한가요?"

"아.. 그래.. 오늘은 좀 바쁘고 내일부터 한번 보자."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매일 두. 세 시간씩.

처음엔 학원 숙제를 봐주는 식이었는데 굳이 학원을 보낼 필요를 못 느낀 나는 그냥 내가 다 챙겨주겠으니 당분간 학원 접자 했다. 만약 도저히 안 되겠으면 다시 학원 보내는 식으로 해보자 했다,


줌으로 하려다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사진과 카톡 그리고 보이스톡을 활용했다. 단어를 하나도 읽지 못하던 조카는 나의 원거리 일대일 스파르타 방식으로 학교 숙제인 문장 외우기도 완수했으며 제법 해석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영우처럼 천재는 아니라서 학습능력이 많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수학도. 국어도. 그리고 지금은 과학도 봐준다. 학교생활에 대한 대화도 많이 주고받는다.


일상대화중 조카가 그런다.

"선생님과 반장님께서 수업시간에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반장님 께서라고?" 조카는 당연한 줄 알았던 <반장을 향한 존칭>에 대한 <고모의 버럭>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놀란다. 나는 그동안 조카가 학급 친구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존대하되 반장은 그냥 친구야. 이름을 불러도 되고 높일 이유가 하나도 없어. 알아듣겠니? 절대로 반장을 선생님과 같이 대하지 마!"


그리고 우영우가 반에서 왕따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우영우는 똑똑하고 아버지도 미혼부지만 정상이다. 그런데 조카는 가족 구성원 다섯 명 중 조카를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다.


그나마 요즘 매일의 보이스톡으로 그 집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나는 아이에게 과일과 야채를 챙겨주고 건강식 위주로 아이의 저작운동을 키워줄 것을 주문했으며 태권도를 보낼 것을 강력히 권했다. 다행히 첫째 아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나에게 연락해서 의논을 한다. 태권도도 큰 조카의 강력한 지원 사격으로 이루어졌다.


운동신경이 떨어지니 태권도장에서의 생활도 쉽진 않으리라. 하지만 독립할 수 있게 학습을 시켜야 하고 다른 아이처럼 융통성 있게 키우기는 힘들겠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론 이런 짐들은 왜 늘 내 몫인지 답답함이 몰려온다. 여기 인도네시아에서까지 내 몫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공부방을 하면서 다른 아이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많이 도왔는데 또 못할 이유가 뭔가 싶기도 하다.


조카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우영우는 한 명이라도 있는데. 급식도 먹다 보면 혼자 남아 상급학년 아이들이 오기 전에 그냥 남은 거 버리고 간다고 했다. 자기가 늦게까지 남아 혼자 먹고 있는 이유를 스스로도 모르겠다고 했다. 식욕도 없단다. 배가 꼬르륵해야 먹는 때인 줄 안다나.. 장애 등급이 나올 정도의 지적 수준은 아닌데 상황판단을 융통성 있게 하기는 많이 어려운가 보다.


조카의 중학교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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