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웃에 다운증후군 친구가 있었다. 나와 동갑내기여서 중학교 때 같은 반을 한 적이 한 번 있다. 그 친구는 키가 아주 작고 통통했고 뽀얀 피부를 갖고 있었다. 등. 하굣길은 늘 엄마와 함께였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친구에게 몇몇 선생님들이 친구들 앞에서 주현미의 <밤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부르게 시켰고 친구도 트로트 풍으로 멋들어지게 불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구를 놀린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다행히도 친구는 선생님께 지목되어 친구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반에 목사님 딸이 있었는데 하루는 선생님께서 다운증후군 친구를 위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게 시켰고 그녀는 그렇게 진지하게 기도했다.
물론 반에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친구를 놀린다거나 왕따를 시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곁에서 그녀와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려는 아이도 없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에 속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집 가족도 아는데 좀 챙겨줬어야 마땅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 친구는 성인이 되면서 여느 일반인들처럼 몸의 변화가 찾아왔고 안전하지 않은 집 밖으로 나가려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던 친구는 엄마가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아줌마가 안 계신동안 친구가 혼자 나가서 사고라도 당하면 안 되니까 친구의 엄마는 문을 밖에서만 열수 있게 해 두고 일하러 나가셨다.
정신 연령이 초 1 이하였던 친구는 아파트에 혼자 있으면서 촛불을 켜고 놀았나 보다. 그러다 탈이 나고 말았다. 집에 불이 난 거다. 안에서 열고 나가지 못하게 해 두었던 탓에 친구는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고 그대로 집과 함께 작별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엄마 가슴은 찢어지는데 내가 잠가놓고 간 집에서 불이 났는데 문도 열지 못하고 떠나버린 딸아이를 보는 그 마음은 감히 형용할 수도 없으리라.
다시는 그 집을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아파트 근처를 가는 것도 두려웠으리라.
그때는 무심히 지나갔던 일들이 요즘처럼 다운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가진 아이들 소재로 드라마가 나오고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금 나에게 그때의 일들이 무겁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