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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19. 2022

택배상자로 대신할 수 없는 마음

팔순 친정엄마가 여수 애양병원에 입원해 계신지 벌써 열흘째다. 오래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았으나 큰 통증은 없었기에 여태 그냥 지켜보다 최근 일, 이년 사이 통증이 너무 심해지셨고 지팡이를 짚고 겨우겨우 다니시는 모습에 결국 수술을 결정했다. 어디서 수술할지 고민 끝에 무릎관절 수술 전문병원으로 알려진 여수 애양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가 봤다가 바로 결정하게 되었다.


아직 전염병인 코로나가 돌고 있는 상황이라 수술 당일 보호자가 함께 머무는 것도 되지 않고, 그 이후로도 병원을 나가기 전까지 보호자와 환자의 직접 접촉은 불가하다. 워낙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 환자 분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더 한 모양이다. 다른 입원 시설들도 그런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4인실에서 함께 생활하시고, 모두 무릎 관절 수술이나 뼈 관련 수술을 하신 분들이다.


현재 나는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관계로 상담할 때만 함께 가보고 지금은 직접 가보지도 못하고 소식만 듣고 있다. 저번에 상담차 여수를 다녀왔는데, 가보니 거리도 멀고 가는 길 터널 안에서 아찔한 사고(다행히 어떤 차들도 추돌은 없었다)도 목격했고 면회도 되지 않으니 딱히 방문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4인실을 함께 쓰다 보니 근처에 계신 분들은 더러 가족이 와서 간식거리를 챙겨 주시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남에게 신세 지기보다는 베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 성격에 얻어먹기만 하는 상황이 꽤나 불편했으리라..


엄마는 새로 산 슬리퍼가 불편하고 예전에 집에서 쓰던 알로에 연고도 필요하니 과일도 좀 챙겨서 갖다 달라고 아들에게 말씀하신 모양이다. 나는 곁에서 늘 돕는 올케언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면회도 되지 않으니 그냥 택배로 보내라고 강력히 말했고 엄마도 그러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 결국 나의 물밑작업으로 택배 보내는 쪽으로 굳히게 되었다.     


어제 오후 두 시경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 '엄마'다. 엄마가 병원 건물 위에서 환자복을 입고 흰색 마스크를 쓰시고 자식들이 있는 아래를 내다보시는 모습을 오빠가 사진 찍어 보낸 것이다. 그 사진 한 장은 너무 많은 걸 느끼게 해 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던 나를 완전 뿌버리는 사진이었다.

코로나로 자식들을 면회도 못 해보고 건물 위에서 바라만 보고 계신 엄마


아련한 눈빛의 하얀색 환자복 속 울 엄마. 내가 완전히 틀렸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세상은 합리적인 것 만이 모두가 아니라는 걸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차가 막히지 않을 경우 차로 왕복 5시간 거리, 터널만 몇 개를 통과해야 하고 도착해봤자 직접 면회도 안되고 그냥 물건 박스만 두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 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내가 완전히 틀렸다.


비록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모두 가린 모습이었지만 아련한 그 두 눈에 모든 게 들어 있었다. 그렇게 라도 보는 자식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고마우셨는지 위에서 바라보시는 모습. 전혀 예상을 못 했다. 세상은 논리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그 보다 더 강한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걸 그 사진은 보여 주었다.


엄마께 보이스톡을 했다. 목소리가 너무 밝다. 한 방을 쓰시는 다른 분들도 함께 위에서 아들 구경을(?) 하셨단다. 모두들 흐뭇해하셨단다.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까.. 그게 뭐라고 내가 그렇게 반대했는지 나의 판단 착오에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챙겨 온 방울토마토와 참외 그리고 사과가 너무 맛있어서 모두들 좋아하시고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셨단다. 엄마의 목소리가 정말 해맑다. 그 마음을 편리한 택배 상자와 바꾸려 했다니..


택배로 결정해 두고도 오빠들은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큰 오빠가 작은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아내는 집에서 쉬게 두고 그냥 자기들끼리 물건을 챙겨서 직접 가지고 가 보자고 했단다. 작은 오빠도 그게 낫겠다고 수긍하고 그렇게 출발했단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말리지 않았을까..


엄마도 택배 상자만 오리라고 생각하고 계시다가 자식들이 왔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엔돌핀이 폭발하는 목소리라니.. 세상 어떤 약보다 효과 있는 즐거움의 약, 행복의 약.. 이게 바로 살아가는 의미가 아닐까..


나름 합리적이라고 자부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작아지게 만드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배울 게 너무 많다. 언제 철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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