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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19. 2022

인도네시아 브로모 화산을 다녀오다

인도네시아는 '르바란'이라는 일 년 중 제일 중요하고 긴 휴일이 있다. 모두들 노는 휴일이라 전 직원 강제 휴가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휴일엔 어디라도 다녀오기 위해 나는 계획을 짠다. 원래 가족여행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큰 아이가 빠진 여행이 아쉽다.


큰 아이는 한국에 있고 코로나로 왕래도 좀 어렵다. 하지만 르바란 휴가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다. 큰 아이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동안에는 코로나가 없었기에 해마다 르바란이 되면 여기저기 여행지를 물색하기 바빴다. 인도네시아 유명 관광지 외에도 싱가폴, 말레이시아, 호주로 가족여행을 다녔다. 큰 아이는 수학여행으로 친구들과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고등학교 때는 블리뚱, 발리, 롬복 등 유명한 관광지를 다녀왔다. 그리고 아이는 비자 문제로 해외로 나갔다 와야 하는 일이 생겨 고3 때 친구 둘과 말레이시아 페낭도 다녀왔다.


큰 아이 빼고 어디 가기가 미안해서 처음엔 애가 가본 곳, 하지만 나머지 우리 셋은 가 본 지 7년 된 발리를 가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에서 발리를 가기엔 너무 어려웠다. 자카르타를 가야 비행기가 많고 우리가 사는 스마랑에서는 프로펠러 비행기뿐이었다. 차로 한 시간 남짓 가는 '솔로'에서 가는 비행기도 있긴 한데 비싸고 전에 좋지 않은 경험이 있는 '라이온' 뿐이었다.


결국 생각 끝에 차로 갈 수 있는 '브로모 화산'을 가기로 했다. 수라바야 지역인데 차로 5시간 가야 한다. 그것도 막히지 않을 때에 한해서.. 예전 르바란 때 반둥에서 찌까랑까지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막히던지 지옥의 르바란 교통을 경험한 우리는 우선 기차 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어찌 된 게 기차로 더 오래 걸린다. 8시간 남짓 걸린다. 남편은 다분히 운전이 하기 싫은 모습이다.


일단 기차표를 찾아봤다. 표가 많이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기차를 타 본 적 없고 예약도 처음이다. 뭔가 잘 안된다. 에고 모르겠다 내일 하자 싶어 미뤘더니 그 새 표가 모두 매진이다. 민족 대 이동은 한국이나 인도네시아나 똑같다. 이런 휴일엔 표가 바로 다 사라진다. 남편에게 연락했다 기차표가 없다고. 남편이 할 수 없다며 차로 가자고 호텔이나 이틀 밤 묵을 수 있도록 어서 예약하란다.


'말랑'호텔을 찾아봤다. 호텔도 사정이 만만치 않다. 대부분 예약이 꽉 찼고,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묵을 수 있는 호텔이 거의 없다. 호텔이 없으면 모텔급이라도 묵어야지 하는 마음에 모든 숙소를 검색했다. 다행히 바로 몰 근처에 호텔이 하나 있었다. 좀 여유 있게 다녀오고 싶었지만 남편이 차 막힐 걸 걱정해서 그냥 이틀 밤만 예약하란다. 내심 또 골프 가려고 그러나 보다 싶다. 하지만 예전 르바란 교통체증을 한 번 겪어 본 적 있기에 강하게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이틀 밤 결재완료.


그렇게 우리의 브로모 여행은 시작되었다. 유부초밥, 주먹밥, 볶은 김치를 챙겨 차에 올랐다. 생각보다 가는 도로가 너무 좋다. 주변 환경이 찌까랑과는 사뭇 달랐다. 휴게소 3군데 정도 들리며 6시간 정도 달리는 동안 대부분 직선 코스였고, 양 옆으로 벼농사와 사탕수수가 쫘~악 펼쳐진 게 너무 아름다웠다. 예전에 학창 시절 책에서 배웠던 '김해 대평야'를 내 머릿속에서 그냥 작은 논 한 덩어리 수준으로 격하시켜 버리게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저렇게 많은 벼들을 어찌 심었으며 나중 수확은 또 어찌할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사탕수수가 하얀 꽃(?)을 피운 모습도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구름을 보며 열심히 달려 드디어 '말랑'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차를 잘 못 타는 작은 아이의 멀미 '두통'이 걱정되었지만 직선 코스라 그런지 이번엔 별 탈 없이 잘 도착했다. 큰 아이의 문자가 왔다.'제주도' 간단다. 큰 아이를 빼고 가니 마음 한편이 좋지 않았는데 큰 아이도 제주도를 갔다니 뭔가 다행이다 싶다.


호텔에 도착해서 브로모 화산 여행 패키지를 알아봤다. 우리는 셋이라 프라이빗 패키지를 예약했다. 외국인이라 두당 입장료가 만원씩 추가된단다. 그래 봐야 세명 전체 비용 18만 원 정도다. 밤 12시 출발이란다. 일출을 봐야 해서 출발 시간이 그래야 하나보다. 오는 동안 내가 준비한 밥을 먹었기에 배는 고프지 않았고 바로 옆에 있는 몰에 가보니 별로 살 것도 없었다. 일단 잠을 좀 자 둬야 할 것 같아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보통 르바란 첫날은 무슬림 새해라 폭죽 소리가 많이 들리니 바로 깰 거라 생각하고 잤다. 그런데 알람을 맞춰놓지 않았으면 깨지도 못할 뻔했다. 폭죽 소리가 없다. 이 동네는 또 다른가 보다. 밤 11시 40분경 일어나 우리는 어서 나갈 채비를 했다. 일출 명소가 해발 2700미터가 넘는 곳(백두산보다 높다)이라 한 겨울처럼 춥단다. 인도네시아에서 한 겨울을 느낀다니 신기하다. 하긴 예전 반둥에서의 캠핑도 그야말로 엄동설한이었다.


두꺼운 잠바와 옷들을 껴입고 내려가니 차가 이미 와서 대기 중이다. 밤 12시에 차를 타고 출발이다. 오르고 또 오르고 계속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른다. 차를 탈 때마다 걱정이 아이의 두통인데 갑자기 아이가 탄성을 지른다. 또 머리가 아픈가 걱정됐다.


다행히 차창밖의 별들을 한 번 보라고 감탄하는 탄성이었다. 2000여 미터 산 중에 오르니 별들이 쏟아진다. 예전 호주 퍼스 별들의 향연과는 사뭇 달랐으나 여기 별들 또한 너무나 많고 밝게 반짝인다.


중간 집결장소에서 현지인 아낙들이 마구 모여들어 장갑과 모자를 사라고 난리다. 깜빡하고 호텔에 장갑을 두고 와서 아이 꺼 한 세트만 샀다. 4천 원주고(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도 바가지였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이 크진 않았다. 그 추위에 팔아보겠다고 나와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짓 가니 이제 내려서 지프로 갈아타란다. 예전 므라피 화산의 지프와는 달리 지붕도 있고 덜 덜컹거리는 것 같다. 10분 정도 더 이동하고 도착했단다. 이제 걸어서 가야 하나 보다.


공기가 너무 차다. 하지만 별들이 너무 이뻐 잠시의 추위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형 원형경기장 관중석처럼 되어있는 관람석 돌 위에 깔 매트를 판다. 남편은 두장을 산다. 엉덩이 시리다고.. 정말 추웠다. 얼마 전 한국에서 3도의 추위를 느꼈던 터라 설마 더하겠냐 생각했던 게 오산이란 걸 깨닫기까지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두꺼운 옷을 몇 겹 껴입고 숄도 덮었으나 그 속을 찬 기운이 여지없이 파고든다. 온몸이 시리고 떨린다.


암흑 속에 별들만 반짝인다. 사람들이 계속 모여든다. 새벽 3시 30분쯤이나 되었을까.. 산인지 하늘인지 구름 인지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빨갛게 물이 들기 시작했다. 태양은 보이지도 않는데 세상의 한가운데를 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이런 일출은 또 처음이다. 아름답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조금씩 조금씩 주변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구름이 많이 껴서 그런지 일출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태양이 얼마나 밝은지 해가 보이지도 않는데 주변은 온통 붉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하면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데 저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


아이는 사진에 담기 바쁘다가 자기 휴대폰 배터리가 10퍼센트도 남지 않은 걸 보고 낙심한다. 앞으로 찍어야 할게 더 많은데 어쩌냐며. 강추위에 더 빨리 소진됐으리라..


날이 밝아오자 우리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델바이스와 말린 꽃들을 판다. 하나 살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짐이 될 것 같아 말았다. 내려오다 너무 추워 뜨거운 커피라도 한 잔 하자 싶어 작은 간이 와룽(가게)에 들렀다. 사람들이 많다. 화장실을 가려니 3백 원씩 내란다. 한국에서의 좋은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해왔던 나는 얼마 하진 않지만 아까움을 느끼며 지불하고 다녀왔다.


이제 '사바나'를 간단다. 학교에서 배운 사바나 대 초원이 여기 화산지대에 있다고? 그래 봐야 뭐 시시하게 흉내나 낸 곳이겠지 큰 기대 없이 지프를 타고 이동한다.


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사바나인가 보다' 하는 순간 정말 대초원이 펼쳐진다. 너무 신기하다. 바로 근처에 화산재가 날리는 화산이 즐비한데 여기 대초원이 펼쳐진다고? 나이가 들수록 초록 초록한 걸 좋아하게 된 나는 사바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하늘이 그렇게 맑진 않았지만 펼쳐진 초록이 내 마음에 평온을 가져온다.


 아름답다. 평평한 산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쁘다. 영화를 찍어도 좋을 듯하다. 대학교 때 본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인 초원을 거닐며 양팔을 뻗어 두 손으로 긴 갈대 같은 풀들을 쓰다듬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주인공의 모습이 떠 오른다.


작은 아이는 지프에서 충전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대느라 여념이 없다. 사바나의 매력에 빠져 거기서 시간을 좀 보냈다. 패키지여행의 단점은 바로 이거다. 나는 하루를 다 보내도 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거. 하지만 여기는 개인이 자기 차량으로 오는 경우는 없는 듯하다. 모든 차량이 형형색색의 '도요타 지프'다.


이제 우리는 진짜 '브로모 화산'으로 향한다. 우리가 탄 지프가 화산재로 가득한 내리는 포인트에 도착하자 무슨 서부영화를 연상할만한 일이 벌어진다. 말을 탄 아저씨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 뒷굽이 만든 먼지를 날리며 우리를 '다그닥 다그닥' 쫓아온다. 그 모습은 마치 추격전을 연상할 정도다. 말을 타고 브로모 화산 계단 입구까지 올라가 준단다. 만 오천 원이란다.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주변 환경을 걸으면서 몸소 느껴보고 싶었던 나는 끝까지 쫓아오던 아저씨의 꼬심을 끝끝내 포기하게 만들고 아이만 태워 보냈다. 가면서 아이의 투덜거리는 소리는 듣기 싫어서였다.


화산재로 가득한 곳이라 그런지 걷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한 보통의 산과는 사뭇 달랐다. 온통 화산재라 푹푹 들어가는 발과 미끄러운 길을 남편을 따라 조심조심 올라갔다.


계단 입구에 말을 타고 먼저 도착한 아이와 만나 한 계단 한 계단 걷기 시작했다. 아이의 지루함과 힘듦을 없애보고자 계단을 세면서 올라갔는데 400여 개였던 것 같다.


꼭대기에 오르자마자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렸다. 화산이 끓는 소리다. 화산이 1.2백여 미터 아래로 커다란 볼 형태로 파여 있어서 계단을 오를 때 까지는 구덩이에 파묻혀 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정상에 오르자마자 엄청난 굉음이 들려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화산 아래 영롱한 옥색의 액체가 마치 화산의 눈처럼 고여있다. 그날은 하얀 연기가 많이 나진 않았지만 그 옥색의 눈망울 같은 물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활화산이라 그런지 주변의 난간이 모두 부식되어 제대로 되어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어떤 안전망도 없다. 화산의 능선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지만 나는 그 무시무시한 화산 분화구를 본 순간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 발자국만 헛디뎌도 저 세상이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 오른쪽은 분화구로 향하는 낭떠러지, 왼쪽은 화산재로 가득한 낭떠러지.. 그래도 반둥은 안전지대 표시도 금지구역도 만들어 놨던데, 거기보다 훨씬 위험해 보이는 브로모 화산은 어떤 안전장치도 없다. 그냥 '도전해보고 실패하면 골로 가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다.


남편은 능선을 조금 다녀오고 싶단다. 제발 조심하라고 사정했다. 지켜보는 것만도 내 다리는 안정감을 잃는다. 도저히 못 서 있겠다 싶어 계단이 있는 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런데 나에게 이유 모를 이끌림을 주는 화산이다. 다리가 덜덜 떨려 서 있기도 너무 무서운데 이 이상한 이끌림은 뭘까..


브로모는 인도의 '브라마' 힌두신의 이름을 인도네시아어로 표현한 것이다. 하루 두 번씩 힌두 제사를 모신다고 했다. 이렇게 힘든 코스를 두 번씩이나?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제사를 모시기 위한 하얀 의상을 차려입은 아이부터 남녀노소 여럿이 제사 채비를 하고 화산으로 향하고 있다.


 만약 내가 계단 중간쯤에 있었더라면 그들을 따라가서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이미 다 내려와 버려서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다. 제사의식이 너무 궁금해 검색을 해보니 그 모습을 찍은 건 없고, 제사에 관한 내용만 조금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엔 신을 달래기 위해 실제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던졌다고.. 아.. 제물로 바쳐졌던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을 안고 지프로 향하고 있으니 새로운 지프들이 쏙쏙 들어오고 있었고 그 주변은 역시나 미국 서부 영화에서나 봄직한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다. 7~8마리의 말들이, 아니 그 말을 탄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채찍을 휘두르며 열심히 달리고 있다. 뭔지 모를 안타까움이 스친다.


이제 다시 숙소로 향하기 위해 지프에 몸을 실었다. 산 하나를 내려가니 우리가 숙소에서부터 타고 온 '아반자'가 기다리고 있다. 또 산을 오르고 내린다. 중턱에 안개가 너무 많다. 감자가 많이도 심어져 있다. 아줌마인 나는 감자를 좀 사 가고 싶었지만 욕심을 버렸다. 온통 하얀 세상이라 안갯속인지 구름 속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과 동시에 너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저씨, 천천히 조심조심 몰아주세요' 행여 사고라도 날까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친다.


이번 르바란 여행길은 집으로 향하는 길도 막히지 않고 너무 좋다. 큰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지만 아이는 제주도 여행 중이니 그걸로 퉁치자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서야, 우리도 네가 여행하던 딱 그 시기에 2박 3일 다녀왔어. 다음엔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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