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ssy Jun 19. 2022

새벽 운동길에 젖먹이 고양이와 조우하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7년째 살고 있는 가정주부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주택에 산다.


아침 운동을 위해 대문을 나서니 대문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며 '야옹'한다. 축 늘어난 젖꼭지들을 보니 새끼를 낳고 젖 먹이는 에미인 듯하다. 이 동네는 고양이가 아주 많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비어있는 우리 옆집 현관 모퉁이에 새끼들을 숨겨 둔 그 아이 같다. 그때 새끼 고양이들이 궁금해 들어가서 확인해볼까 하다가 비어 있는 집 이긴 하지만 그래도 남의 집이라 그냥 포기한 적이 있다.


이 아이가 왜 우리 집 앞에서 불쌍한 목소리로 '야옹'거릴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옆집이 깨끗해진 게 청소하면서 새끼들 젖 먹이던 곳을 빼앗겼나 보다.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새끼들이 어디 있을 텐데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문득 나를 경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건지 어미 고양이는 젖을 늘어뜨린 채 새끼들이 있는 울타리 쪽으로 가더니 새끼들을 끌어안고 건들지 말라는 경고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보통 새끼를 뱄거나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에미 고양들은 아주 예민하다.


새끼들을 여기로 데려다 놨구나.. 잠시 갈등이 된다.

고양이의 성장은 너무나도 빠르고 몇 개월 안에 어른 고양이가 될 텐데 도와주기 시작하면 주변 다른 고양이들도 우리 집 주변으로 모두 몰려 올 테고 우리 집이 야옹이들 놀이터가 되겠지. 그리고 일 년이 되지 않아 또 임신할 테고 어른이 된 새끼 고양이들도 또 임신하고.. 한 번에 4,5마리의 새끼들을 또 낳겠지..


 어쩌나.

사실 우리 집이 고양이 놀이터가 되는 건 두렵지 않다. 밤마다 싸우는 그 소란함이 무서울 뿐이다. 고양이는 영역을 아주 중요시하는 동물이고 예민해서 자주 싸움이 일어난다. 요즘도 밤에 지붕 위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혈투가 벌어진다. 주택에 살면서 고양이 싸움을 여러 번 목격했고 지붕에서의 전쟁은 그야말로 공포다.


인도네시아는 세를 주기 위해 만드는 집 천장은 태권도 격파에나 쓰이는 송판 같은 걸로 만들다 보니 더러 오래된 집에서는 집안으로 고양이가 추락하는 일도 생긴다. 덕분(?)에 자다 봉변당한 지인은 남은 계약금 다 포기해 버리고 아파트로 즉시 도주(?)했었다.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예전 살던 곳은 길고양이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번식 관련 관리도 해줬다. 먹이를 주는 사람 중 수의사가 있었는데 직접 불임 수술을 시켜주고 귀 끝에 살짝 표시도 해줬다. 내가 그러기엔 이 동네 물정도 잘 모르거니와 수술해줘야 할 고양이가 수십 마리가 넘는다.


고양이들은 그냥 두면 일 년에 두 번도 새끼를 낳는 것 같다. 한 번에 네, 다섯 마리를 낳으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개체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끌어안고 젖을 먹이는 고양이가 너무 안쓰럽다. 나도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봤기에. 자기 배가 다 차야 젖이 나올 텐데 피곤한 몸을 흙바닥에 뉘어 새끼들을 위해 젖먹이는 모습이 애잔하다. 하지만 집을 만들어주고 보호해 준다면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진다. 머리가 복잡하다. 감당하기엔 사안이 너무 복잡하다. 이 아이들을 모두 끝까지 돌볼 자신이 없다. 불쌍하지만 애써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담벼락을 뚫고 나무가 자라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