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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Aug 27. 2022

인도네시아에서 <한산>을 보다

인도네시아 스마랑으로 이사 오고 선물처럼 한 한국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스마랑 오기 전 살던 동네도 같고 동갑에 심지어 남편 나이까지 같으니 친구가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목요일 아침부터 카톡 소리가 요란하다. 누군가 싶어 확인하니 그 친구다. "오늘 바빠요?"로 시작한 내용은 스마랑에 <한산>이 들어와서 보러 가려하는데 같이 가려는지 묻는 거다.


사실 난 <명랑>도 보지 않았고 전쟁 장면 같은 잔인한 걸 싫어하는 편이라 한국에 사는 조카가 <한산>을 보러 간다고 말할 때도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보물 같은 친구라, 그 친구와 함께라면 어떤 영화도 재미있을 거 같아 함께 가자했다.


인도네시아도 상영관마다 티켓값이 천차만별인데 오늘 보는 건 프리미엄이 아닌 일반관이고 그렇게 만석이 될만한 영화가 아니라 그런지 3천 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한국은 만원도 넘을 텐데 생각하며 상영관이 있는 몰(mall)로 향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선 코로나 전에 한국에서 들어오는 영화는 애들과 남편 성화에 놓치지 않고 챙겨봤지만 스마랑으로 이사 온 후로는 처음 보는 한국영화다.


영화 상영관 입구의 한글 포스터부터 눈을 끌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도 아닌데 4년 정도만에 해외에서 보는 한국영화라 그런지 뭔가 가슴속에서 뭉클함이 뿜어 나오는 기분이다.


몇몇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시작이다. 한국에선 떠들썩했는지 몰라도 사실 난 배우에 대한 정보도, 영화에 대한 내용도, <명량>에 이은 작품인지도 (사실 명량도 보지 않았고 어떤 클립 영상도 본 적 없다) 모른 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눈이 좀 나빴지만 한국 영화니 자막 볼일은 없겠다 싶어 안경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반은 일본어다. 자막은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일본어는 전혀 모르니 안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 이순신 배역을 맡은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너무 이순신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만약 이순신이 살아 있다면 정말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배우가 누군지 너무 멋있고 절제된 감정을 연기해내는 모습이 정말 압권이었다.


화려한 전쟁 장면들이 끝나고 영화가 마무리되었다. 자막이 올라온다. 이순신 박해일. 아니 아무리 배우들을 잘 모르고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편인 나라 해도 어떻게 박해일을 몰라볼 수 있나 싶었다. <연애의 목적>에서 그 깐돌 거리던 변태 체육교사, <살인의 추억>에서 그 무서운 살인범, 은교에서 노인 분장을 하고 미성년의 아이에게 빠져가는 모습을 연기한 바로 그 배우가 이순신이었다고?


이건 분명 나를 탓할일이 아니다. 분장에 얼굴이 반쯤 가려졌다 해도 그가 연기를 지나치게 잘한 거라고 볼 수밖에...  아무리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영화를 봤다 해도 이순신이 너무 멋있다고 어디서 저런 사람을 캐스팅했을까 하며 본 사람이 박해일이었다니. 내가 평소 그리 관심을 갖고 봐 온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러 영화에서 봐왔는데 이렇게 팔색조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놀라웠다. 이번 <한산>에서 그의 연기에 반해버렸다. 박해일이여 영원하라!


중2 딸아이 에게도 보여줘야 되겠다 생각했는데 아마도 내가 본 게 마지막 상영인 듯싶다. 아쉽지만 집에서 네플릭스에 올라오면 영화관에 안 간척하고 집에서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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