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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Oct 03. 2022

본격적인 우기 시작인가

비가 많이 온다

비가 온다. 많이 온다. 비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빨간 비옷을 입히고 장화를 신겨 물 웅덩이를 찾아다니며 첨벙거리게 해 줬고 나도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걸 좋아했다.


내가 고등학교 무렵부터 막 교복이 다시 도입되어 입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 학교 수업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방법을 찾던 우리는 개인 책상 위에 깔아 둔 작은 장판을 이용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장판 조각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비닐로 대충 감싼 가방을 앞으로 메고 길에 가득 찬 물을 사방에 튀기며 달렸다. 가면서도 비를 맞는 건 아무 걱정도 아니었는지 놀이를 하듯 내내 깔깔대며 신나 했다. 집에 도착하니 가방도 책도 신발도 교복도 온통 젖었지만 마냥 즐거웠다. 그땐 그랬다. 단 한 번의 폭우 속 친구와 달린 경험이 지금도 상큼한 추억으로 남는 걸 보니 정말 재미있었나 보다.


인도네시아의 우기는 보통 하루 한 번씩 폭우가 쏟아진다. 폭우 이기는 하나 한두 시간 정도만 지나면 싹 그친다. 기온이 좀 내려가기는 하지만 습도가 올라가니 움직이면 덥기는 매 한 가지다.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을 때가 2월이었고 우기였다. 폭우가 쏟아지는데 거의 항상 천둥 번개 동반이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무섭진 않았고 그냥 멀리서 하늘이 나무의 잔뿌리처럼 갈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번개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적어도 올해 3월 번개로 집이 정전되고 등이 망가지고 옆집 기와가 조각나 떨어지면서 차 뒷유리를 관통하는 걸 목격하기 전까지는.


이젠 번개가 치면 겁이 난다. 특히 밤엔 더욱더 그러하다. 폭우가 오더라도 번개만 치지 않으면 좋겠다. 피뢰침이 왜 필요한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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