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엄마 부고를 6개월 지나 알게 되었다.
언젠가 육신은 결국 떠나는구나..
어느새 내 나이 중년. 큰아이는 벌써 대학생이다.
고등학교 단짝 친구가 아직 미혼이다. 얼굴도 예쁘고 인기도 있을만한 아이인데 20대에 몇 년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더니 그 후론 인연이 생길 듯하기만 하고 끝내 잘 연결되지 않았다.
사람들을 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동호회나 어떤 활동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조그만 학원만 다니니 인연이 그리 쉽게 닿을 리가 없다.
그 친구는 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외로움도 타고 독신을 고집하는 아이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있으면 커피숍으로 책을 들고 가서 그 책 속의 작가 이야기에 빠져있길 좋아한다.
내가 외국으로 이주를 한 후부턴 한국 방문 때마다 만나긴 했지만 서로에게 주어진 환경이 다르다 보니 대화도 조금씩 엇나가기 일쑤였다. 내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친구는
"넌 자식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한 게 뭘까.."
자기 비하인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투정인지 <눈치가 좀 있어라 친구야>라는 무언의 압력인지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함께 건강검진하러 가지 않을 테냐고 물었더니 하지 않은지 10년도 넘었고 관심도 없다고 했다.
내가 먼저 한국 도착한 지 2주일 정도 후 남편이 왔다. 남편의 휴가 열흘 동안 볼일을 마쳐야 하는 관계로 급히 함께 건강검진을 받고 친구에게 남편과 건강검진을 했다고 톡을 보냈다.
"글쎄.. 나는 남편이 없어서 갈 수가 없네.. "
라는 친구의 답이 도착했다.
아이고야.. 내가 또 실수했네..
사실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고 인사도 없이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그동안 연락을 애써 하지도 않았고 근황을 챙겨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7개월이나 지난 지금 문득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때 친구라 그런지 또 생각이 났나 보다.
친구는 카톡 프로필을 자주 업데이트하는 편이니 우선 사진들을 살펴봤다. 엄마의 부고다. 사진에 친구 엄마의 존함이 적힌 하얀색 항아리가 놓여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돌아가신 지 벌써 6개월이나 지났다.
내가 한국을 떠나고 한 달 조금 지나 서다.
우린 만나면 가족 이야기도 많이 했다. 친구 엄마는 혼자 무릎 건강을 위해서 실내 자전거를 30분씩 타실 정도로 건강하셨다. 물론 한번 쓰러지신 적이 있긴 한데 그 후로 거동이 좀 불편하긴 하셨지만 건강에 별달리 문제는 없으셨다.
팔순을 갓 넘기시긴 하셨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가신다고? 친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망설이다가 카톡을 넣었다.
"친구야.."
몇 시간이나 지나 겨우 읽음을 알리는 노란 숫자 1 이 사라졌다. 답은 없다.
답이라도 있어야 무슨 말이라도 해줄 텐데 참..
요즘 뭐하며 지내고 있는지..
서로 만나면 엄마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가슴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잘 견뎌내야 할 텐데..
친구야 힘내라. 여전히 어느 카페에서 책장을 넘기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홀로 절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지.
곁에서 위로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