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ssy Jan 09. 2023

대중목욕탕에 경찰이 (1)

십수 년 만의 동네 목욕탕 체험

사시사철 더운 인도네시아 생활 어느덧 8년.

보통 아이의 여름 방학 때 한국을 방문했기에 혹독한 겨울은 8년 만에 처음이다.


인도네시아는 더워서 하루 두 번의 샤워를 했다. 아침 운동 후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지만 한국의 겨울 기온은 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도 피부를 뚫고 스미는 냉기가 너무 소름 끼쳤다.


한국에 살 때도 대중목욕탕을 싫어하는 편인 나였지만 8년 만에 처음으로 느끼게 된 너무 추운 한국의 겨울 날씨에 더 이상 집에서 샤워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국의 모든 걸 체험해보려 애쓰는 중인 작은 아이와 둘이 뜨듯한 동네 목욕탕을 가 보기로 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낮은 샤워기가 나열되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을 틀고 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우리 쪽으로 와서 혼잣말인 듯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아이고마. 잠시 쩌그 가서 머리만 감고 왔드만 요로케 내 자리가 읍 졌쓰야"

분명 두고 간 물품이 없었고 비어있는 곳이라 앉았지만 고음의 불평이 나를 향한 것임을 금방 눈치챈 나는 다른 자리도 많았기에 조용히 바로 물건들을 옮겼다. 아이의 첫 대중목욕탕 방문기에 찬물을 끼얹기 싫어 최대한 조심조심 행동하려 애썼다. 


가벼운 샤워를 마친 우리 둘은 온탕 체험을 위해 행여 미끄러질 바닥을 사뿐사뿐 밟으며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갔다. 의 온도는 내게 살짝 뜨거웠다. 아이는 견딜만하다며 몸의 반만 탕에 담근 나를 놀렸다. 그 마저도 재미있어 서로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그 순간 아까 자자리에 앉았다고 불평을 늘어놓던 사람이 우리가 있는 탕에 손을 넣 보더니

"어매 뜨거운 거. 찬물 좀 틀어야 쓰겄네" 하고는 옆쪽 다른 탕에 자신의 몸을 담근 채 팔을 뻗어  탕의 계에 놓여있던 차가운 물의 밸브를 사정없이 끝까지 잡아당겼다. 바로 차가운 냉수가 정적을 깨려는 듯 사정없이 콸콸 쏟아졌다. 당황스럽긴 해도 뭐 좀 뜨거웠겠거니 하고 잠시 참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계속 다른 탕에 몸을 담그고 있고 우리가 있는 탕의 물온도에는 관심도 없다. 이미 물의 온도는 많이 내려갔고 더 이상 방치하면 냉탕 수준이 될까 봐 찬물 밸브를 조용히 잠갔다. 맘이 좀 불편해진 우리는 그만 탕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대충 샤워만 하고 그냥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머리 감고 때를 벗기는 대신 몸에 비누칠 두어 번 했다. 우리가 앉은 곳은 탕에서 제일 먼 곳이었지만 또다시 너무도 카랑카랑한 두 여자의 목소리가 두 귀를 때렸다. 별스러울 것도 없는 대화였지만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는 대중탕이라는 공공장소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딸아이와 나는 고성의 거친 두 목소리가 너무 비정상적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조금 살펴볼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그러다 우리 샤워기 끝쪽에 앉은 중장년의 여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에서 폭발직전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만 불편한 게 아니었구나 싶어 조금 안도했다.


탕쪽은 꽤나 멀었지만 그녀는 앉은자리에서 소리쳤다.

"시끄러워 죽겠네. 목욕을 못 하겠다 진짜!!"

제법 큰 소리였지만 시끄러운 그녀들은 자신들의 고성탓에 들을 수 없었는지 대화를 멈추거나 소리를 줄이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소음에 우리 둘은 서둘러 목욕탕을 빠져나왔고 아이에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쓰는 장소에서의 예의를 가르치며 한국 방문중 머물고 있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다시는 저 목욕탕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계속)


작가의 이전글 내가 먹은 게 흑돼지가 아니라 멧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