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타는 사람. 나는 계절을 탄다. 특히 가을을 탄다. 다른 계절도 저마다의 특징이 있으며 그 특징에 따라 다른 감정이 된다. 그러나 탄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당연 가을이다. 더운 여름엔 더 열을 내어 나름 활기로 가득한 생활을 하지만, 찬바람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저 그 차가움에 지고마는... 그래서 나는 가을이 되면은 휴가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즐겁기 위한 휴식이 아닌. 엄청난 낙차로 뚝 떨어져 버린 마음을 달래기 위한 휴가. 낙상사고 당한 마음의 치료를 위한 요양.
여름은 물론 덥고, 습기로 가득한 공기는 주위의 조금의 움직임까지 신경쓰이게 한다. 그런 온도와 습도까지 전부 사랑할 순 없지만. 나에게 그것은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온도보다는 훨씬 견딜만한 것이다. 추워지는 계절. 나는 웅크려든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안에 갇혀서 나오고 싶지 않아진다. 그건 매년 이어져왔던 자연스러운 과정. 나는 찬바람을 대비하기 위한 무엇이든 해야 한다.
가라앉은 기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그런 날들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을지도 지금으로썬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일때도 책 속의 문장들은 나를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 앞엔 나는 당연하다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들을 위한 문장들을 모아보기로 한다. 이곳저곳 뒤적여 볼 필요도 없이 단 하나면 충분한 그런 글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모아 나를 위한 글을.
그날에 나는 꼭 이 글을 열어보고 문장들을 바라보고. 가장 좋아하는 색의 펜을 골라 종이에 꾹꾹 새겨보기로 하자. 그래서 마음에 위로와 응원의 문장들을 꾹꾹 채워넣자.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이것만은 기억하기로 하자.
필사노트를 뒤져 다시 만난 글. 이미 나를 위로했었던 읽고, 또 읽고, 써내려간 글들. 처음의 감동은 이미 가셨을 텐데 몇 번째 만남에도 여전히 심장을 움직이는 이 글들은 분명 나를 위로하는 효력이 있을 것.
나는 처음에는 선우 언니가 도망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도망은 때로 나쁜일이 아니라는 것을. (전삼혜,「나름에게 가는 길」中)
누군가는 한가지를 오래 하는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둘지도 몰라. 그러나 그게 언제나 최고인 것은 아니니까. 피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버티는 것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나는 피할 수 있는 일을 피하고,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는 것도 용기고 해결법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도망치고 싶다면 그래도 돼.
“언어를 알게 되면서 엄마도 나와 같은 시간을 갈게 되겠지. 느려지고, 멀어지고, 작아지고, 힘겨워지겠지. 이건 저주야. 맞아, 저주가 맞아. 기껏 자연이 인간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저주의 주문이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영원히 말의 미로 속을 떠돌다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인간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길 바라” (천선란,「모우어」中)
너와 내가 기꺼이 겪기를 바라는 어두운 감정도 있다. 그런 감정들이 있어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우울함과 어두움을 다 겪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서 쑥쑥 자랄거야. 나는 언제나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우울과 어둠까지도 전부 알아내자.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中)
어떤 일에도 의미 있을거라 생각한다. 불행의 불구덩이 그 한가운데 있을 때에 그런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여태까지 지나온 대부분의 불행에는 다 의미가 있었고, 배움이 있었고, 성장이 있었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나를 잊지말자. 나의 존재 이유와, 나의 존재 목적을 잊지 말자.
걱정은 때로 도움이 된다. 걱정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나는 그 마음까지 이용해보려고 한다. 나는 걱정이 너무 많아. 벌써부터 가을을 걱정한다. 걱정의 끝엔 걱정들이 무색한 그런 선택들을 자주하는 나라서. 내가 이렇게 미리 걱정을 당겨한다는 것은 아주 가까운 사람 중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몰라도. 내가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변치 않지. 나도 걱정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걸 어쩌겠어. 걱정을 대비와 계획으로만 이용하기 위해서 오늘도 노력한다. 미리 문장들을 골라 담는다.
잠시 숨을 고르던 시기들은 꿈처럼 지나가 버리고. 숨을 헐떡이며 매일을 뛰어다니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나의 8월은 내내 이런 날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 날들을 미리 내다보고 있자면 벌써 숨이 다 막혀온다. 그러나 그날들을 부디 잘 지나가 보려한다. 언제 도망쳐도 모를 날들을 잘 지나가고 시간을 만들어 내게 방학을 주려고 한다. 내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미리 계획한 척. 가을 방학을 예정한다. 잠시 보이지 많더라도 조금 기다려줄래요. 나는 금방 돌아올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