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온도에 취약한 사람. 나는 추운 계절 앞에 작아지고 만다. 다른 계절에도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는 하지만.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반면 추운 계절엔 이불 밖을 나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 땀을 흘리지 않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곧 겨울이다. 여름만큼 긴 겨울을 나는 잘 보낼 수 있을까. 추운 온도에 취약한 몸을 가지고 길고 어두운 겨울을 보내려면 여름보다도 더 단단한 마음이 필수다. 몸과 마음은 이어지기 마련이라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잘 흔들린다는 것이 문제지만,, 겨울이 되기 전에 준비를 해 조금이라도 튼튼한 마음으로 겨울을 시작해보려 한다. 건강한 마음을 위한 준비 시작!
가장 열정적이었던 여름. 그런 열정적인 마음이었던 여름 다음엔 한층 더 가라앉은 가을이 온다. 이번 가을이 특히 그랬다. 그래도 그 가을에 불안함을 덜고 쉬어가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한창 여름일 때에 남겨두었던 문장들 덕분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흔들리는 마음에 바깥을 향했던 시선을 돌려 진짜 나를 알게 해주는 문장들. 나는 그 문장들을 보며 가을을 시작했다. 그리고 9월 한 달. 다른 때보다도 더 많은 문장들을 차곡차곡 곳간에 쌓아갔다.
당장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명상하듯, 기도하듯 써내려갔던 문장들이다. 그러나 그 기간을 돌아보니 뜻밖의 성장을 이룬 내가 있다. 10년 쯤 전이었나. 처음 필사를 시작할 때는 한 문장을 쓰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 한 권, 손바닥 만한 종이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서는 대하소설을 완성한 소설가처럼 완성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는 매일 몇 줄의 글을 읽는 것도, 두세줄의 문장을 기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권을 기록하면 다 끝난듯 뒤돌아서 몇 주는 책과 기록과 멀리 지냈던 것 같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최근에는 필사 루틴이 꽤 잡히기도 했고, 매일 기록할만큼 읽은 책들이 쌓이기도 해서 매일 한 페이지에서 두페이지 정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루틴이 잡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록하지 못하는 날에는 자책했다가, 또 다 끝난듯 일주일을 통째로 쉬다가 하는 날이 반복되기도 했다. 그러다 어제, 그리고 오늘. 빼곡한 일정을 마치고도 한 장, 두 장의 필사가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며. 꾸준하게 쌓아간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짜리 영화보다는 2분짜리 영상을 넘겨보는 것이 훨씬 익숙한 이 때에. 2시간을 앉아서 손으로 글자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수많은 좌절과 멈춤과 재개의 반복을 통해 어느새.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말하는 것이 습관을 만들기에 더 쉽다는 말을 하던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게 필사는 누군가에게 보여줄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오래 지속하는 취미이자 습관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못해도 괜찮은 일. 실패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 나는 그래서 필사를 시작했고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음껏 실패해도 문제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알게 되겠지. 그러니 당장 필사를 시작하고. 필사의 습관 만들기를 마음껏 실패했으면 좋겠다. 시작하고선 잊어버리고, 작심삼일!이라 외치며 당당하게 삼일만 쓰고선 덮어버리고, 또 띄엄띄엄 쓰게 되더라도. 시작하고. 한 줄 한 줄 조금씩 쓰다보면. 언젠간 처음 그렸던 본인의 모습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라있는 자기 자신이 있을 거란 걸. 그런 모습을 만난 사람이 이미 여기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이 세상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꼭 말하고 싶다.
필사를 시작하던 날에는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남기고 싶었고, 습관처럼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그때에 생각했던 것 이상의 모습이 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담아본 이후로 나는 어떤 어려움도 이해하게 되었다.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상황속에 담겨져 본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마음이 흔들릴까. 더운 온도에 쉽게 녹을까, 추운 온도에 쉽게 얼어버릴까. 사실 그게 어떤 온도이든 상관없다. 필사로 단련한 단단한 마음이 있으면 그게 언제든 취약한 계절을 잘 보내게 될 테니까. 나의 곳간은 그동안 문장들을 쌓은 나의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지혜를 담는데 보냈던 그 시간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란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신한다.
어느새 쌓인 노트들, 종이들의 두께처럼. 두꺼운 마음을 가진 내가 있을거라고.
그 마음으로 취약한 그 계절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길고 긴 겨울이지만 그럼에도 아주 잘 나고 봄을 바라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