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아두었던 애정을 돌아보기

˚₊ ˚ ‧₊ .:·˚₊ ˚ ‧₊ .:·˚₊ *˚ㅣ유체이탈

by 윤슬







옷을 입은 나의 육신은 세면에에 머리가 박힌 괴기한 모습으로 멈춰있다. 지금이라도 세면대에서 꺼내야 하는걸까. 아니,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러면 나는 지금 영원한 영혼의 세계에 들어온 것인가. 육체의 세상은 이미 끝이났나. 이렇게 허무하게. 아니, 내 죽음을 유예시킨 건 더러운 방뿐이었잖아. 살아야 할 이유가 겨우 그런 것 뿐이었던 사람의 삶이 얼마나 대단했다고. 드디어 육체의 무거움에서 해방되었는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 뒤돌아보나. 그래 무거웠던 삶은 끝난거야. 나는 이제 끝없는 가벼움으로 온 세상을 날아 다니면서 살게 되는거야. 그렇게. 그렇게 살면 되는거야. 그런데 이런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육체가 죽은 영혼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침대에 기대어 책을 넘겨보던 나는 그만 스르륵 잠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깊은 잠이었다. 그리 길게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반지하라 쾌쾌할 게 분명한 방의 공기까지 상쾌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폐 속 공기까지 눅진했는데. 이른 아침의 공기는 원래 이렇게 상쾌한 것이었나보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나의 몸도 이런 상쾌한 공기를 느끼고 있을까. 차라리 내 몸에 지금까지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영혼이 새로 들어와 상쾌한 공기를 당당하게 마시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미 이 방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있으면 어떨까. 슬쩍 화장실의 확인했다. 그대로 인 것 같다. 숨이 턱 막혔다. 내가 누군가를 죽인 것도 아닌데. 나는 누군가를 죽일 정도의 범인이 되지 못한다. 나는 저것을 죽이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화장실 앞에 저것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움직임없이 어제와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나약한 나같은 영혼이 아닌 다른 영혼이 들어가 강한 힘으로 저 몸을 이끌어주길 바랐는데. 나의 바람은 역시 이루어질리가 없다. 사실 이리 영혼으로 움직이는 것 또한 나는 바란 적 없다. 어떠한 생각도 없는 무의 상태가 되길 바랐는데.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생각으로 가득한가.




복잡해졌다. 저 몸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깊은 수렁으로 빠질 것 같아서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막 해가 뜬 지금은 아침 6시. 늘 시끌벅적한 이 동네가 그나마 조용할 시간이다. 젊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였다가 새벽 늦게 자신들의 집으로 다시 돌아간 이른 아침. 지금 이 시간엔 미처 집에 돌아가지 못한 몇몇만 남아 새벽의 바람을 맞으며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동네에 산다고 하면 시끄러운 곳에 집이 있느냐며, 그런 곳에 살 수 있는가 하는 말을 듣곤 했다. 나는 언제나 살아있는 것 같은 이 동네가 좋았다. 나는 아닐지라도 이곳의 생기는 나를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으니. 도시의 소음 같은 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전엔 피곤에 쩔어 쓰러지듯 잠들어 소음을 들을 수 없었고, 최근엔 그런 소음을 라디오처럼 들으며 새벽을 보내곤 했으니까. 다들 즐기며 사는 삶인 것처럼 보여 쓸쓸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감정은 길진 않았다. 삶이란 원래 그렇다는걸 알았으니까. 내 삶의 모습은 이미 받아들인지 오래였다. 그래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곁에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그런 사람으로 보일까봐서. 이 동네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곳에 살았을 때에 나는 매번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이 동네에선 다른 곳으로 이사가게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영혼이 훨훨 날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되도 미련없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이 동네를 보니 조금은 아쉬울 것 같았다. 취해서 널부러져 있는 금발 머리를 한 저 남자, 길가에서 담배피는 화장이 번진 여자, 곳곳에 분주하게 펼쳐져 있는 쓰레기들로 바로 얼마전까지 사람들로 가득했음을 느끼게 하는 새벽 골목의 풍경까지. 아름답지도 않은 풍경에서 이런 향취를 느끼다니. 내가 이 동네를 이 정도로 애정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촉촉하고 상쾌한 아침새벽의 공기도. 매일 마시는 공기인데.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실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스럽다. 사람들이 움직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주변에 없는 게 없는 이곳을 사람들을 많이 찾았다. 다른 곳에 살았으면 나는 이곳에 한번이라도 왔을까. 잘 모르겠다. 집이기 때문에 오고갈 뿐 찬찬히 둘러본 적이 많지도 않아 지금 이곳에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찾는지, 어떤 곳들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나는 그렇게 오래 채우고 배우기 위해 발버둥쳤는데 모르는게 아직도 많다. 내가 아는 몇 안되는 곳. 그나마 자주 찾던 이 도서관. 그마저도 찾지 않은지 꽤 됐지만 무언가를 더 알지 못해 안달이 났던 나는 주말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어댔다. 집에는 차마 들어가지 못해 주저하던 차에. 막 문이 연 도서관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나는 도서관 4층의 종합 자료실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읽고 싶었던 책을 빌려서 집에 가져가는 것도 좋아했지만, 우연에 의해 선택된 책의 기쁨이 또 있었다. 느낌 가는 대로 한 권 집어들어 도서관의 책 냄새를 느끼며 창가의 쇼파에서 앉아 읽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 계획없이 온 오늘도 늘 그랬듯 신간 도서들을 훑고 800번대의 번호를 가진 책들의 서가를 꼼꼼히 살펴보기. 도서관에서는 늘 같은 냄새가 났다. 나무 아니면 종이. 그보다는 신문이나 잉크 냄새. 아니 그냥 도서관 냄새. 오늘도 역시 그랬다. 다른 것은 울렁이는 내 손가락. 신착 도서를 손으로 훑는데. 손가락이 울렁거렸다. 어제 밤보다 조금 더 심하게. 그래도 책을 집을 수는 있었으니까. 생각을 하자마자 손이 책을 통과했다. 이미 희미한 나는 얼마나 더 희미해지는 걸까. 아니 선명했던 적이 있기나 할까. 나는 놀라 손을 뒤로 숨겼다. 아무도 나를, 나의 행동을 보지 못할텐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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