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ㅣ유체이탈
책을 집지 못한 나는 다시 또 두리번거리는 수 밖에 없게 됐다. 무인 기계로 대출과 반납을 하는 탓에 한 마디도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익숙한 얼굴의 사람. 도서관에 일하는 사서는 바쁘게 일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더 분주해 보인다. 책에 어떤 종이를 끼워넣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저 사람은 나의 얼굴을 알고 있을까. 일하는 그 앞에서 괜히 서성이다가.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하는지 제 할일을 반복하는 걸 보니 괜히 골이났다. 그래서 사서 책상 바로 반대편에 있는 발받침대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영영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렇게 된 건 어떤 일인가. 슬퍼야하는 일일가. 기뻐야 하는 일일까. 이렇게 가벼운 몸으로 정상적인 생각을 하며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인데. 더 많이 울렁거려 영혼이 무의 상태로 사라지게 되는 일은. 그거야 말로 정말 바라던 일인데. 그건 기쁘다고 말하지 않고 있네.
답할 수 없는 질문에서 피하기로 했다. 잠시 바닥을 향했던 눈을 다시 사서에게로 돌렸다. 책에 종이를 꽂는 업무가 끝난 듯 그의 눈은 모니터에 고정 되어 있다. 아침잠을 다 깨지 못한 듯 흐린 눈빛. 내가 볼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은 대부분 그런 모습이었다. 문을 열고 닫을 때 바로 옆에 보이는 책상 앞에 앉아서 손가락 몇 개로 일을 하는 모습. 현대인의 대다수는 그런 모습을 하며 일하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몸의 다른 부위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손가락들만을 겨우 움직이며 하루종일 앉아있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손가락 몇개만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큰 몸을 다 들고 움직여야 하다니 참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찾아왔다. 뭐라고 말하는지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검색해보니 이 책이 보관 서가에 있다고 하는데 찾아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사서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눈빛에 찔린 듯 심장이 저릿했다.
함께 이동하는 그들을 따라 갔다. 그들은 문 밖으로 나가서 비상 계단 뒷쪽 직원만 출입 가능하다 쓰여져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방금 보았던 책들보다 더 낡은 티가 나는 책들이 꽂혀져 있었다. 여기저기 꿰매고 붙인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뭐라 얘기하는 듯 하더니 산삼이라도 캔 듯 조심스러운 손길과 조용한 환희의 눈빛을 한 채 한 권의 책을 뽑아 들고 서가를 나갔다. 그들의 표정이 정확히 웃는 표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빛나는 눈빛과 조금은 달뜬 듯한 숨과 붉그스름한 볼까지. 또 그들이 기쁘지 않다고 말할 증거도 찾지 못했다. 그들은 뭐가 그리 기쁜가. 그들을 계속 쫓았다. 자료실로 돌아가 절제된 행동으로 바코드를 찍고, 책을 건네고, 받아서 조심스레 가방에 넣는. 그들의 모든 행동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흥분감. 고작 낡은 책을 찾고 빌렸을 뿐인데 저들은 뭐 그리 신이 나는건데.
중고책보다는 빳빳한 새 책을 선호했다. 누군가의 손길 닿고 흔적이 남겨진 것들은 왠지 별로라고 느꼈다. 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것들을 찾는데 애쓰기 보단 누구나 알 수 있는 눈에 띄는 유명을 따라왔다. 그런데 오래되어 낡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 뒷 방에 들어간 낡은 책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있자니. 나의 취향과 마음이란게 정말 나의 것이 맞았는지 의심이 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이었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는 사실 그들처럼 오래된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을까. 낡은 상자 안에 모아둔 편지들처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을 아끼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작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마음이 다만 어떤 학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서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었는데. 눈을 감고 그 얼굴을 떠올리면 지루해 보이는 표정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표정을 짓지 않아도 자꾸 새어나오는 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 그 안에서도 추구하는 가치를 분명히 알고 있어서. 그 가치를 만났을 때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 그래서 더 고집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