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ㅣ유체이탈
책을 볼 수도 없는 도서관이었다. 책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어쨌든. 그 사이 반납된 책들을 정리하는 사서에게는 오래된 책 곁에서 보였던 반짝임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오래된 보물. 나는 나의 오래된 보물을 찾으러 다시 집으로 가야겠다.
낡은 옷들은 하나 둘 씩 다 처분했다. 아끼는 책들도 10년이 넘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짐들 중에 특별히 오래된 상자 하나. 그 상자는 기간으로 따지면 20년도 더 전부터 모아왔던 것들이 모아져 있다. 책상의 아래쪽 구석에 있는 갈색 상자. 나는 그 안에 오래전부터 추억들을 모아두었다. 짊어지고 왔던 책들보다도 더 오래동안 모아왔던 것. 사는 일에 바빠 그것이 존재했다는 기억조차도 잊고 있었다. 지금도 주변에 살고 있을 대학 동기와 찍은 사진들부터, 기억도 가물가물한 친구에게 받은 그림 편지까지. 120%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다가 주말엔 쉬기 바빠 연락도 받지 않고 숨어있던 나를 시기마다 밖으로 불러내주었던 친구와 찍은 사진.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매일 봤던 친구처럼 티격태격 장난을 쳤던 친구와의 사진. 그 아래 마음이 어려운 시절마다 떠올리게되는 애뜻한 친구와 나눈 장문의 편지. 서로의 환경, 배경, 모든 것을 극복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달랐지만. 가장 약하던 시절을 함께 보내던 친구. 그 시절 나는 그곳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친구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었다. 답을 바라지 않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었다. 편지라는 이름의 일기. 혹은 회상록. 너만은 다 안다고, 나도 그렇다고 말해줄 마음들을 잔뜩 펼쳐놓은 그 글은 편지라기 보단 넋두리에 가까웠고. 그래서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답장이 오기까지 한 날이면. 그런 날엔 나는 이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다른건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음도 편지를 쓰고 보내던 마음보단 못했다. 이런 마음을 말로 전하는 건 평생가도 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편지로. 글로. 글에 나타나는 화자는 내가 아닌 것처럼 나를 속이며. 그러나 모두 알았겠지 그 편지 속의 어떤 것도 나이지 않은 것이 없단 걸. 작은 점 하나까지 전부 나였어. 나는 말하지 않으면 않았지 내가 아닌 것은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 모두 나인 채로 해내려 했으니까. 가끔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닌 것처럼 또 다른 모습의 자아를 펼쳐 나를 숨기고 싶어서. 어떤 얼굴을 펼쳤다가 끝나면 확 접어버리는. 자기를 나누고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러웠어. 나는 정말 한 번도 그러지를 못했는데. 누구보다 찌질하고 못난 순간들까지 전부 오롯한 나여서. 너무 올곧은 사람이라 내가 싫었어. 나도 언젠간 그런 다채로운 선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너에게 닿을 편지를 쓰며 이런 마음을 가진게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라서 기뻤고. 또 슬펐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도 사는 사람이 세상에 나뿐이 아니라니. 둘도 아닐 것 같아. 아마 셋, 넷, 다섯…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나를 좀 놔뒀으면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며 쫓았던 때가 전생 같아서. 가끔은 나는 사실 아무것도 좋아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너와 나눈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으며. 역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나는 사실 마음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사는게 그리 어려웠던 것 같다고. 모든 일에 나의 진심을 담는 사람. 그래서 그 일이 잘못되면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 나는 탈출을 꿈꿨다. 작은 학교가, 동네가, 도시가 답답했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온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건 이제와서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다. 사실 나는 그때도 그리 따뜻한 곳에서 살지도 않았는데. 바깥은 그보다도 더 찬 공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었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던. 그 동네. 그 학교. 그때의 우리가 보고싶다.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는 나. 당장 너가 있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버스 터미널까진 30분. 시외 버스로 1시간 반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의 동네가 있다. 거리상으론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나의 마음의 거리로는 서울과 파리만큼 멀다. 먼 거리만큼 떠나온 동네를 자주 찾지 않았다. 많아야 일 년에 한 두 번. 이제는 벗어난 곳인데도. 아직도 그곳을 생각하면 마음이 다 답답했다. 그래서 자주 찾아올 수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떠나고 싶어하는 곳이었지만 여전히 그 동네에 머무르는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적막하고 광활한데 답답하기까지한 그 동네에 어떻게 여전히 머무를 수 있는지. 멀어지는 것이 가장 최선의 목표였던 나는 그들의 머무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것만으로 강하다는 증거가 된다는 말을 알지만. 머무르기 위해선 너무 많은 인내가 필요해서. 머리를 뜯고 허벅지를 찔러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더 먼 세상으로 떠날거라고. 매일 말했다. 미국으로, 유럽으로, 그것도 안되면 서울로. 꼭 떠나고 말거라고. 알던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싶던 나는 그곳을 벗어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만은 이룰 수 있었다. 활기찬 삶, 성공한 사람, 여유있는 태도 같은 다른 바라던 것은 하나도 이루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나고 자란 그 동네를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어서 다른 도시에 사는 일 같은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것을 이룬 것으로 보아. 그것만 이룬 것으로 보아. 사실 내가 바라던 일들 중에 그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어도. 무작정 떠나면 되는 거니까.
지방이 다 시골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나왔다. 서울을 벗어나면 전부 낭떠러지라 생각하는 바보들. 그러나 내가 살던 동네 주변에 다다를 때 즈음에 보이는 논과 밭의 풍경들을 보면. 이 정도면 시골이 맞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에 살게된 지 얼마나 됐다고 도시의 풍경에 더 익숙해졌나. 사실 이 동네가 시골이든, 도시든 그런 것은 별로 상관 없었다. 그때 나는 이 동네가 지겨워 떠나고 싶었고 방금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답답하게 여겨졌는데. 왜인지 지금 버스밖으로 내다보는 확 트인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도 싫어서 떠나왔었는데. 다시 찾지도 않았는데. 왜 이제와서. 좋은 시절을 살 때에는 그 시절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안다. 모든 것이 부족해서 궁핍했던 나의 그 시절만은 절대 좋은 시절이라고 말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는데. 객관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좋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와. 자연에서 뛰어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서울과 경쟁할만큼 우수한 학군을 가지지도 못한 애매한 이 도시. 이 도시는 나의 못난 상태를 오래도록 지속시켰다. 모든 것을 너무 사랑해 상처를 받던 애정이 넘치던 시기에도 그 도시만은 아끼지 못했었는데. 이제와서 이리 애틋해져버리다니.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나의 몸은 쾌청한 공기를 가진 이 도시를 마지막으로 밟아보지 못하고 이대로 끝이나려나. 안녕이란 말도 한번 뱉어보지 못하려나.
작은 도시. 우리가 살던 도시는 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일렬로 마주보는 길에 쭉 늘어선 아파트들에 사람들이 빼곡히 살고 있었다. 근방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몇 개씩 있어 과목별로 없는 학원이 없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학원의 강사로 일하는 너. 학교 선생님은 여러 곳을 이동해야 하지만 학원은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서 좋다고 말하던 너.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은 비슷했지만 너는 유난히도 변화를 두려워 했다. 그러고보면 고등학교 내내 이곳저곳 나라를 바꿔가며 그곳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하는 나의 곁에서도 너는 어딘가를 가고 싶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비슷한 성적대의 학교 중에서도 제일 가까운 학교를 선택해서 다녔고, 조금 그리고 잠시 멀어져서 학교를 다니는 일에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난 애정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넓은 세상으로 가려 했다면, 너는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끝까지 사랑하려 떠나지 않고 버티려는 사람이었다. 너무 많은 애정으로 지쳤던 것은 비슷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모습은 아주 많이 달랐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지역들로 이동하며 살게 되면서도 이곳을 전혀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학교와 학원인 이쪽 거리로는 거의 와볼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본 골목의 풍경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눈으로 봤을 때 바뀐 건 교체된 간판 몇 개 말고는 없다. 고등학생 때와 지금의 키도 거의 비슷한데, 왠지 작아진 것 같은 골목의 건물들. 혹시 내가 떠다니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신경부터 세상을 완전히 떠나고 있는 건가. 모르겠다. 여전한 것은 빨간색과 흰색으로 된 간판을 가진 학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너의 얼굴. 그래. 학원은 주말에 수업을 했었지. 주말에 쉬는 나와 달리 주말에도 일을 하는 너라서 우리는 더 오래 만나기 힘들었다. 숫자와 기호가 섞인. 언젠간 알았지만 지금의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공식들을. 아주 익숙하게 화이트보드에 써내려가는 너가 보인다. 너라면 분명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거라며. 그만두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아도 괜찮고, 늙어서 받는 연금도 보장되어 있고, 주말에는 쉴 수 있는 그런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을거라는 말을 했었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던 말이었다. 우리는 오롯이 우리로 살 수 밖에 없어서 아픈 사람들이라는 말을 나눴던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런 말을 건냈을 때의 너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가, 볼이 패일 정도로 말랐다를 반복했었다. 그런 너에게 나는 겨우 종이쪼가리에서 배운 것들을 뭔가를 통달한 마냥 너에게 전하곤 했었다. 그랬었는데 지금 너는 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으로. 내가 사는 이 도시에 머무르는 일이 가장 좋아. 이 도시와 함께 살고 싶어. 그런 답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때 나는 너의 태도를 전보다 많이 자란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자란 건, 바뀐 건 내쪽이었다. 자란다는 것에는 여러가지 방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