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나의 모습을 꺼내보기

˚₊ ˚ ‧₊ .:·˚₊ ˚ ‧₊ .:·˚₊ *˚ ㅣ유체이탈

by 윤슬







내가 선택한 방향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내가 성장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모난 방향으로 삐죽 자라기만 했던 것일 수도 있음을. 너의 편안한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젖살은 좀 빠지고 그래서 윤곽은 더 뚜렷한 얼굴이 됐다. 그러나 여전한 천진한 표정.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고 표정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섣부른 판단인지 다 아는데. 정말 아는데. 내 표정, 분위기, 제스처, 작은 행동만으로 나를 판단하고 말할 기회도 주지 않는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했는데. 나는 이나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서 그렇게 판단해버렸다. 너무 익숙한 얼굴인데, 너무 다른 느낌이라서. 그래서 그랬다. 사실 판단이라기 보단 확신. 보기좋게 드러난 윤곽과 꾸며내지 않은 자연스러운 표정에 묻어있는 웃음기.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의 표정에 조금 더 큰 웃음기를 띄는 얼굴은 내 확신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누군가 정해주는 곳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은 사람. 저가 있을 자리를 알고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사람.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에 이나는 그렇게 성장해 있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자랐는지. 내가 느낀 너의 모습을 너도 알고는 있는지. 또 맞는지. 네게 묻고 싶었다. 너…는…나…어…업…없…이…. 정말 물어보고 싶어서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만이 쉬이쉬이 나올 뿐 소리가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 답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내게 물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씩씩대며 소리를 내려고 더 노력해봤다. 그러나 몇 번을 시도해도 소리는 내어지지 않았다. 소리보다는 숨에 가까운 그것을 내뱉으려고 씩씩대다 얼굴이 다 빨개졌다. 보이지 않는 몸은 색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니 그것은 내 상상일 뿐이다.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끔찍했던 적도 있는데. 이 끔찍한 모습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니 허탈했다. 허탈해서 눈물이 한방울 흘렀다. 열이 올라 빨개지고 있는 볼을 느꼈는데,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분명 느꼈는데.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하나도 무엇일 수 없다는 것이 분했다. 분해서 무게에 짓눌렸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아니겠지만.




그래 나는 좀 분했다. 그렇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잘 자리잡고 살 수 있었다. 이곳저곳 메뚜기마냥 날뛰던 나와는 다른 뜀박질이라는 걸 알았다. 뭔가 자잘한 뜀박질이었다. 이나는 그런 잔 뜀박질로 숨이 차했고, 나는 그런 이나의 마음이 약하다 쉽게 판단했다. 그런 답할 기회를 주지 않은 판단을 나는 이미 했었다. 그날의 우리는 정말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을 보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편지를 쓰는 일이 너보다도 나를 위한 일이란 걸 분명 알고 있었는데. 너 역시 그런 생각을 했을까봐. 나의 마음이 아무것도 아니었을까봐 겁이났다. 아무것도 아니게 된 나는 보다 생생했을 때 역시도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었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 그런 미지근한 공포감 뒤에는 억울함이 밀려왔다. 기왕 그리 뛰어다닐거면 이쪽에 있다가도 다시 그쪽으로 가게 될지라도, 그쪽으로 갔다가도 다시 이쪽으로와 좋아하는 일들을 하기라도 해볼걸. 나는 자꾸만 나에게서 멀어지기만 해왔는지도 모른다. 이 도시, 아니 이 동네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는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 내가 가장 끔찍하게 여겼던 일이 누군가에겐 행복이었다.




지난 날의 애뜻했던 감정 한 조각 가지고 무작정 너를 찾아왔다. 너를 찾아와서 뭘 해야겠다는 계획같은 건 없었는데.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 너의 모습을 보고 이리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을 보면. 나는 너가 그때에서 하나도 자라지 않은 모습이길 바랐나. 여전히 안개 낀 상황 그대로이길 바랐나. 모든 것이 불행하거나, 모든 것이 행복할 수는 없어도 불행의 비율이 조금은 더 높을 너의 모습을 상상했었나. 나의 무너져내림을 보면 그것밖에는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게 가장 싫었다. 너의 행복은 나의 끔찍한 모습들을 더 크게 자각하게 했다. 내가 몸밖을 벗어난 건 해방이라 생각했는데. 다시는 평범한 안락함. 그 비슷한 삶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형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이겨낼 수 없는 사람이어서 아무것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선택한 것들은 가장 끔찍하게 여겼던 것들. 그 안으로 풍덩들어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너에게 다들 할 수 있는 똑같은 헛소리만 했다. 사실 편지 속 문장같은 건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넘치는 책임감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서도 내 삶 하나는 책임져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버티고 있었던 삶이다. 한 숨도 자지 못했지만 아침에 몸을 일으켜 회사에 가는 것도, 몽롱한 정신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을 내뱉어보는 것도, 낮에는 계속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키보드를 두드고 있는 것도. 나 하나 먹고 사는 일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나 대단하진 않더라도. 정말 문제 없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그러나 나 정말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었을까. 나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었다. 너가 좋아하는 선택을 말리는 나도, 먹고 사는 일에 집착하는 나도, 무서워서 아무것도 용기내지 못하는 나도, 도망치다 못해 육체까지 떠나온 나도. 어떤 것도 내가 바라던 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싫은 것은. 편안해 보이는 이나의 모습이 힘들다는 것.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이나라서. 그게 너라서. 내가 더 혐오스러웠다.




너를 보러 온 곳인데 너의 얼굴은 한번 가까이에서 바라보지도 못하고. 뒤돌아선다. 이나야. 이나야. 너가 행복해서 다행이야. 너라도 행복해서 다행이야.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멀리 떠난 건 나면서. 잘 살고 있는 네게 왜 나 없이 혼자서 살았냐고 탓하는 말만하고 이렇게 돌아서는 날 용서해. 영원할 것 같이 굴어놓고 하나도 영원하지 못해서 미안해. 혼자 바뀌어놓고 제대로 잘 살지도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미안하단 말을 뱉을 줄도 모르는 존재여서, 그래서… 하나 다행인 것은 너는 이런 초라한 내 모습을 보지 못할 거라는 것. 만약 내가 다시 방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핸드폰을 조작할 수 있다면 너의 번호를 지우고 말거다. 죽어도 죽은지 모르게. 다신 너의 삶이 나로 인해 힘들지 않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게 할 거다. 그게 널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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