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ㅣ유체이탈
뒤돌아 선 뒤엔 하릴없이 동네를 거닐었다. 다른 할 일이 있어 온 것도 아니었지만. 예상보다도 더 짧은 만남에 나의 시간은 더 둥둥 떠다녔다. 지난 10년간 살았던 도시에서도 자주 찾는 몇몇의 장소가 아니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떠올리지도 못하는데 이곳은 속속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추억들이 나를 이끌었다. 긴 시간 동안 돌보지 못했던 추억들인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취급했는지도 모르고. 그것들은 나를 자연스러운 기억의 세상으로 데려갔다. 걸어서는 꽤 먼 길이지만 다른 곳에선 먹을 수 없는 맛이라며 40분을 걸어서 찾았던 떡볶이집은 아직 여전했다. 간판이 조금 낡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갈 곳 없는 내가 자주 찾던 공원은 산책하는 사람들, 돗자리나 텐트를 펴고 피크닉하는 사람들로 와글와글 했다. 웃기지도 않은 일로 한참을 웃다가 혼나기도 했던 도서관은 복지관으로 바뀌었다. 그 대신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는 앉아서 푸릇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그 구도 그대로. 집까지 들어갈 힘이 없어 잠시 앉아 쉬었다가 졸기도 했던 골목길 앞 작은 공원 속 벤치. 그 벤치에서 앉아보았다. 나란히 놓여있는 벤치 중에 오른쪽에 있는 것 가운데. 그 가운데 앉으면 보이는 풀 숲. 그 자리에 앉으면 마주보는 풀 숲에서는 꽃이 꼭 한 송이만 피었다. 지금은 꽃 대신 텅 빈 공간. 그 사이로 포토샵으로 지운 것 같은 고양이의 꼬리 형태. 뭔가 울렁이는 투명함. 고양아. 너는 왜 거기에 있니.
고양아 너는 왜 그리 얼룩진 모습을 하고 있니.
-아픈 나의 몸을 두고 가끔 이렇게 산책을 해. 저기 저쪽 보여? 저쪽 풀숲에 보여? 저게 내 몸이야.
내 몸을 나왔던 순간 만큼이나 놀랐다. 어떻게 소리가 들릴까?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나의 몸은 서울에 있어. 원래 몸을 자주 오고가? 너만 할 수 있는거야? 아니면 특별한 경우인 거야? 다른 친구들은 어디있어? 묻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은데 소리가 밖으로 퍼지지 않았다. 답답해서 가슴을 쳤다. 딱딱한 가슴팍이라도 퍽퍽치면 답답한게 좀 풀릴 것도 같은데 느낌마저 희미한 손가락이 꽉 쥐어지지 않았다. 희미한 주먹을 억지로 닿게한 가슴팍도 푹신하고 사뿐한 털이불같을 뿐이었다.
-한번에 하나씩만 물어봐. 어떤 말에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
나는 아무리 입을 뻐금거려도 말을 뱉을 수 없는데. 고양이의 말이 느껴졌다. 희미한 고양이도, 고양이가 하는 듯한 말도 전부 나의 환상이 아닐까.
-아니야. 나는 정말 있어.
응. 나도 있고. 너도 있고 그런거지. 우리는 원래 존재하면서도 또 존재하지 않는 채로 사는 건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렇게 지금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거든.
-말을 전달하는 법을 모르는구나.
말하는 법을 몰랐어. 내가 한 것들은 다 쓸모없는 것들 뿐이었다. 정말 필요한 말은 할줄 모르고 필요없는 말들만 내뱉는 사람이었다.
-너의 생각이 들려. 밖으로 소리를 꺼낼 수 없지만. 투명한 너처럼. 너의 생각이 투명하게 들려.
-나의 생각이 너에게 들리니? 나는 너가 생각하는 것을 느끼고 있고?
-응. 그렇게 나를 생각하고 말한다면 알 수가 있어.
-내 생각을 다 듣고 있었어?
-다 느껴져.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다 있잖아.
-너는 어떻게 나왔어?
-나오고 싶었어. 나는 심장이 너무 작아서.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거든. 그런 몸을 가지고 사는게 너무 버거워서.
꽃이 있던 그곳 즈음의 구멍을 실눈으로 바라보다보면 저쪽 편에 작은 까만 고양이 한마리가 보였다. 어떤 것도 어려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은 몸이었다. 가까이 가보고 싶어. 가까이 가서 검은 고양이의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려다 봤다. 정확히 닿을 수는 없었지만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고 해서 심장 박동이 꺼지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다. 심장이 빠르다 못해 몸 밖으로 튀어 오를 것 같다. 작은 몸이 감당하지 못할 크고 빠른 심장을 가지고 살았나 보다.
-버거운 마음이 너를 살지 못하게 만들었어?
-난 아직 살고 있어. 좀 힘들어서 나와있는 것 뿐이야. 잠깐 나와 있지만 나는 곧 돌아갈거야.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거야?
-응. 영혼이 다 사라지기 전에 돌아가면 돼. 그냥 몸으로 폭싹.
-그건 어떻게 알았어? 영혼이 다 사라지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건데?
-정말 사라질 뻔 한 적이 있거든. 몸이 희미해지다 못해 눈 앞의 것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 때가 되면 정말 마지막이 된거야. 그때 빠르게 들어가지 않았다면 정말 죽을 뻔 했다는 걸 직감으로 느꼈어. 들어가는 순간 잠시 심장이 멈췄었거든.
-그때 어땠어. 심장이 멈출 때 많이 슬펐어? 무서웠어?
-미안했어. 더 빨리 돌아오지 못해서 미안했어.
-누군가에게? 아니면 너에게?
-둘 다에게.
나도 너와 같은 과정을 겪게 될까. 나는 결국 몸을 다시 찾는 선택을 하게 될까. 내게도 돌아가는 선택지가 있기는 할까.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투명한 너를 보며 너의 과정을 나도 밟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 탓에 버티지 못한 탓에 몸을 잠시 내려두고 쉬는 기회를 얻은 거라고. 다시 돌아가지 않는 법까지도 알게되기까지 하니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약간의 헛웃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몸이 있을 때 했던 잘못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모든 것을 다 잊고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으로 가는 선택은 할 수가 있어. 악마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 속삭임은 천사의 속삭임일지도. 내게 찾아왔을지도 모르는 기회 앞에 잠시 설레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게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리가 없잖아. 내게 대체 왜. 기대하면 실망이 더 큰 법. 나는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
-난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어. 사람들은 늘 불신과 질문 사이에 있었지 너와 같이. 그냥 보이는 상황 그대로를 믿어. 지금은 나의 생각을 믿는 수밖엔 없지 않아? 나는 너가 나와 같은 기회를 얻은거라 믿어. 그 사람들처럼. 그리고 다시 돌아가게 될 거란 것도 믿어. 그 사람들처럼.
-떠난다는 것을 너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혹시 기뻤니?
-잠시 기뻤지만, 오래 슬펐어. 그리고 사실 떠나는 순간은 스스로 결정 할 수 없어. 나는 오랫동안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너도.
이 기회를 정말 존재하는 것이라 믿게 된다해도. 내가 정말 몸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될까. 내가 몸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또 어떻게 살게될까. 나의 나약한 육체로는 결국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좌절감을 느낄 걸 알면서도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돼.
-그 동안에 너가 본 사람들은 아주 잘났고 삶에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잠시 길을 잃은 사람들이었지?
-너는 바보구나. 그런 사람이 있을리가 없잖아. 내가 본 사람들 중 누구도 그런 사람은 없어.
-아니야. 다시 생각해봐.
-다시 생각해봐야 할건 내가 아니라 너인거 알지? 넌 알고 있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깜박이는 실루엣.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은데. 안돼
-난 이제 돌아가 봐야해. 얘기하다보니 좀 늦었네. 잘가. 난 가볼게.
살겠다는 선택을 한 존재를 붙잡을 수는 없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양아. 너의 이름은 뭐야?
-나는 미라. 미라야.
야옹. 야아아아옹. 야옹. 야옹! 야옹? 야…오오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