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ㅣ유체이탈
화장실의 괴기한 형체를 생각하는데 창문 너머로 여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같은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다. 이웃 사람들에게 큰 관심은 없다. 그들도 그럴거라 생각한다. 가까이 사는 이웃과 친한 친구가 되어 잘 지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볼 용기가 없고, 사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누군가와 만나서 시간을 보낼 힘이 없다. 심지어는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접을 에너지조차 없어서 혹시 인사라도 하는 사이가 될까 누군가 지나가는 것 같으면 고개를 숙여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게끔 했다. 그런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그들도 원하는 바가 같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녀를 알게된 것은 서로의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새벽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시간은 새벽 3시 22분. 공동 현관도 아니고 나의 집 문을 느리게 쿵…. 쿵…. 쿵…..두드리는 소리를. 얇은 철문은 방음이 되지 않아서 숨 죽인채 귀를 기울이면 문 앞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수도 있었다.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문 열어. 나랑 말이라도 하자. 내가 잘못했으니까. 문 좀 열어봐. 거기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ㅅ,,,ㅏ야. 어김없이 선잠으로 보내던 새벽이라 처음 시작한 작은 쿵 소리부터 놀라서 잠을 깬 나는 그의 첫마디부터 끝까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첫 마디가 시작되자마자 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걸 다 안다는 말에선 정말 소름이 끼쳤다. 어쩜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미디어 속 스토커의 대사 그대로인지. 이름은 정확히 듣지 못해 그가 부른 이름이 남자 이름일지, 여자 이름일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문 밖의 저 사람은 다른 여자를 찾으러온 스토커. 혹은 스토커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 문자를 보냈다. 모르는 남자가 저희집 문을 두드려요. 경찰은 금방 출동해 그때까지 사라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경찰에게 술이 취해 친구집을 찾지 못해서 아무 집 문이나 두드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귀가 조치 시키겠다는 경찰의 말에 나는 그냥 알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현관에 들어오는 틈에 몰래 따라 들어와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미디어 속 스토커의 대사를 진심을 다해 말했던 남자의 행동은 그렇게 잠깐의 헤프닝으로 지나가는 듯 했다. 옆집 문을 열고 선아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럴 줄 알았다.
밖에 있던 경찰에게 그 남자를 보냈다는 무전을 듣고, 나에게 말을 하던 경찰도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신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경찰이 나가는 것까지 본 내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옆집 문이 열리고, 긴 머리로 얼굴을 반쯤은 가린 선아가 나왔다. 미안해요. 늦게 나왔죠. 그 사람은 나를 찾아온거에요. 경찰이 가기전까진 무서워서 못 나왔어요. 그러니까 경찰이 가야지 그 사람도 갈 거니까. 그래서요. 이런 일 겪게해서 미안해요.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그러니까 나 때문에. 선아야. 기다렸잖아. 선아는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들지도 못한채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 선아를 부르기 전까지. 그 사람은 앞에 나타나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선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선아는 더 심하게 몸을 떨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많이 불편하셨죠. 앞으론 신고는 안하셔도 되요. 쿵. 아니 신고같은 건 절대 하지 마세요. 그 말과 함께 내 손을 꽉 쥐고 돌아서던 선아. 중간에 남자가 발로 내는 쿵 소리까지 진부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 장면이 왜 그리도 진부하게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지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그 날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선아의 고함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었다. 어떤 남자의 소리도 함께. 그 날 이후로 옆집의 소리가 들린 새벽이면 그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전화도 했다. 당연히 시끄러워서는 아니었다. 아, 우리가 그렇다고 서로의 이름을 나눈 사이가 된 것은 아니었다. 선아라는 이름도 그저그런 날들 중 어떤 날 남자의 입을 통해 들었던 듯 싶다. 선아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오늘은 전화가 좀 힘들것 같으니 어딘가에 문자 한 통을 남겨야겠다. 선아는 언제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될까. 나 다음 순서가 있다면 꼭 선아이길…그래서 선아가 그 고통을 다만 지난 날의 헤프닝 정도로 여기며 이야기 할 수 있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