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l 유체이탈
집 안은 조용했다. 텔레비전이라도 틀어놓지. 쓸모없는 영상이라도 켜놓을 수 있는데. 사람없는 티를 이렇게 낸다. 난 이 적막함이 정말 싫다. 사람보라고 일부러 쓸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노래라도 좀 틀던가하지 왜…. 내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거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나의 모습은 아마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이었다. 나를 보라고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적막하다 못해 으스스하기까지한 집 분위기에 괜스레 화가 났다. 엄마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치 않고 미라를 내려놓고 면밀히 살핀다. 그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기도 한 듯이 집중해서.
-아프니까 지금 씻으면 좀 그렇지? 몸도 좀 괜찮아지고 날 밝은 날 씻자.
모든 것이 고요한 사이 그릉그릉. 미라의 숨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그러자 마치 미라가 무슨 말이라도 했고, 그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듯이 미라에게 답했다. 사람이 하는 말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이 무슨 동물의 말을 알아듣겠다고 저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 어린 것이 왜 아파. 어디가 그렇게 아파. 아가 얼른 나아야 해. 다시 자. 많이 자야 빨리나아.
겨우 뜬 미라의 눈을 보며 말을 하고서는 새로 산 것 같아 보이는 뽀송한 담요를 살포시 덮어주었다. 갓난 아기를 대한대도 저렇게 조심스러운 손길일 수 없을 것 같다. 저렇게 작았던 존재를 이렇게 되기까지 키워본 적 있는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어색한 손길이었다. 나도 저렇게 작았던 때가 있었겠지. 작다고 할 수 있는 나이는 몇 살까지 일까. 나의 최초의 기억은 4살 즈음. 엄마가 어딘가 나를 맡기고 병원에 갔을 적에. 누군가 커다란 존재를 붙잡고 가겠다며 엉엉 울던 기억. 그때면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날의 단편적인 기억 다음엔 6-7살. 이미 말을 잘하고, 글도 읽고, 유치원과 학원도 다니며, 가까운 곳은 혼자서 가기도 했던 그 때의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그때 나는 이미 다 컸다고 생각했으므로. 그 나이는 이미 작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생각하기엔 말도 못하게 작은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러면 4살 이전의 작은 존재였던 나를 마주하던 엄마는 지금처럼 저리 조심스럽고 어색했을까. 조금이라도 잘못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하듯. 엄마. 우리는 그런 힘으로 부서지지 않아. 우리를 부서지게 하는 건 엄마의 손짓이 아니야.
엄마의 행동은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미라의 몸은 몹시 작았다. 아파서 크지 못한 것인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다 컸지만 여전히 작은 몸인 것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미라가 다 자라지 못한 것은 아닐 것 같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모두 아는 미라는 이미 어른. 어쩌면 노인. 다 컸지만 여전히 작은 사람도 있다. 어떤 면에서든 특히나 작은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 미라에게는 그게 육체의 크기, 건강… 그런게 아닐까. 나의 작은 점은 아마 마음. 엄마의 작은 점은… 엄마의 작은 점도 아마 마음. 나는 엄마를 따라 작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 지도 몰라. 엄마는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질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본인의 마음조차도.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실체도 없고 그래서 만질수도 없는 것을 만져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저 사람의 마음을 무시해야지. 하는 그런 악의 있는 마음이 아니라. 그런 식의 사고 회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안될 것 같은 환상을 쫓는 일을 포기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의 선택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거나 분명히 손에 잡히는 것.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올바른 것. 딱 그런 것들만 선택할 수 있는지 아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 행동들이 전부 악의없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된지. 멀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바른 생활 습관을 가지고, 내야할 곳에 밀리지 않고 돈을 내는… 먹고 사는 그런 문제들이 당연히 더 중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이 되지 않고서야 마음같은 건 다 소용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까. 어떤 말들은 사람을 질척이는 진흙속에 쳐박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의 목숨은 그런 힘 같은 게 아니라 어떤 말 한마디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정말 느낄 수 없을까. 그런 것은 머리로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아서 모른다는 것은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나도 모르는 어느새 눈에 보이는 것들을 돌보기 위한 일들만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감정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 것은.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당신들의 무심함 또는 무식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온 엄마의 삶이란 알 수 없는 거라고. 그것 이외의 다른 생각은 배울 수 없던 그런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 거라는 대답을 스스로에게 해주며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런데 왜 지금 그렇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한 시간이 넘게 꼼짝없이 미라를 바라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