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 부코

오랜 시간을 들이는 일

by 오후 네 시

토론토가 예전만큼 춥지 않고 눈이 안 온다고 적었었는데 역시 일월이 되면서 눈 내리는 날이 잦습니다. 기온도 제법 내려가서 우리 집 개들을 산책시킬 때 내복과 장갑, 털모자 (정말 어그처럼 양털이 달린 것)이 필수인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번 주에는 몸이 좀 아팠습니다. 비록 파트타임이긴 하나 일을 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서 몸이 아프면 일상이 두 배 세 배로 버거워집니다. 그래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감기약을 챙겨 먹고,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러 가는 대신 조금 더 자면서 버텼습니다. 지금 일하는 병원에는 현재 제가 유일한 수의사입니다. 수의사 구하기가 어려워진지 한참 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방면으로 스트레스가 많고 하루에 보통은 열 시간, 열 두 시간씩 일하는 경우가 많은 직업이라 (그래도 일주일 사십 시간을 넘기는 경우는 자진해서 더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자살률도 높고 직업을 떠나 연관되었으나 임상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탓도 있습니다. 토론토라는 도시가 생활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물가가 비싼 도시인 탓도 있습니다.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일터에 약속한 시간 이전에 도착해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고 진료기록과 각종 약 오더, 클라이언트들의 메일과 전화에 답장까지 마무리하고 퇴근합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이렇게 까지 하느냐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아픈 환자들을 생각하면 어휴 그래도 일어나서 아픈 아이들 도와주러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웁니다. 예약된 진료들은 환자와의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어 쉽게 어길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 남자 보호자 둘을 울렸습니다. 둘 다 노령의 대형견에 관련된 일입니다. 한 아이는 까만 진돗개를 닮은 영민한 녀석인데 너무 경계심이 심해 주사로 진정을 해 편히 잠들게 한 다음에서야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골반뼈 주변에 골육종 소견이 보였습니다. 그 아이가 그날의 마지막 진료환자였는데, 퇴근하는 길에 저 멀리 앞서서 터벅터벅 눈물을 훔치며 걸어가는 그 아이의 반려인의 뒷모습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빠가 왜 저렇게 울지 하는 표정으로 자꾸만 반려인을 바라보며 절뚝절뚝 걸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는데 가서 우산이라도 씌워 주고 싶었는데 왠지 그러지 못하고 그 뒷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다른 샛길을 통해 차를 주차해 둔 주차장으로 쏜살같이 걸어가 버렸습니다. 차 안에서 한참 동안 생각을 가다듬고 머리를 비워야 했습니다.


다른 한 아이는 너무나 착한 얼굴을 한 골든 리트리버입니다. 열네 살이면 골든 리트리버로서는 백세를 다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이번 주 수요일, 다리를 좀 저는가 싶고 식욕이 떨어졌다며 저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진료를 시작하자마자 녀석의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를 만져보니 비장머리가 촉진되지 않습니다. 골든 리트리버에게서 드물지 않은 비장 유래 혈육종인 거 같습니다. 엑스레이 테이블 위에서도 한없이 얌전하고 착한 아이입니다. 엑스레이 이미지를 판독하려고 열어 보니 뱃속이 커다란 종양으로 가득 차 다른 장기들의 디테일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 아이의 아빠인 남자 보호자도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이럴 때 나도 같이 울면 안 되니까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때가 되었을 때를 알아차리는 법이라든가, 그 상황이 오면 집에서 안락사를 할 것인지 병원에 올 것인지 그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집에 찾아가 안락사를 시켜주는 수의사를 소개해 주고 진료를 마무리합니다. 이런 일은 몇 년이 되어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아프던 아이를 안락사하면서 하늘로 편히 보내주고 난 다음이 마음이 편합니다. 내가 이 고통을 끝내주는 거야 하고 스스로를 세뇌시킨 덕분입니다. 이런 케이스를 마주하고 나서 퇴근한 날 저녁에는 식욕이 전혀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밤에도 가끔은 시끌한 꿈을 꾸며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수의사의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려 해도 천성이 예민한 탓에 쉽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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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이 고단할 때, 그리고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는 추운 날엔 역시 푹 고아 우려낸 고기요리가 생각납니다. 코스트코에 장 보러 갔다가 사 온 소고기 정강이 부위로 이태리 요리인 오소 부코 알 포모도로 (osso buco al pomodoro)를 요리해 저녁으로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주말 저녁입니다. 이 요리는 밀라노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랜 시간 찌듯이 오븐에서 요리해야 하는 것 말고는 상당히 간단한 요리입니다.


재료는 양파, 셀러리, 당근, 타임, 소고기 육수, 화이트 와인, 토마토 다진 것 캔, 토마토 페이스트, 마늘, 타임, 월계수잎, 소금, 후추, 약간의 밀가루, 그리고 고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레시피는 https://www.ricardocuisine.com/en/recipes/2149-osso-buco입니다. 간략하고 명료한 레시피입니다.


우선 고기의 핏물을 닦아 낸 뒤 (저는 고기 둘레의 지방부위를 제거하는 편입니다) 앞뒤로 밀가루를 얇게 묻혀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 위에서 표면을 구워 줍니다. 구울 때 냄새가 기가 막힙니다. 그렇게 겉표면이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었으면 고기를 꺼내서 접시에 두고 같은 팬에 오일을 더 해 양파 다진 것이 투명해질 때까지 익힙니다. 저는 이때 셀러리며 당근, 생 타임 몇 줄기를 같이 넣어 볶아 줍니다. 그리고는 화이트 와인 (사진의 와인은 화이트 와인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내추럴 와인으로 껍질까지 넣어 발효시킨 스킨 컨택트 와인입니다)을 아낌없이 팬에 넣어 끓여주면서 바닥에 눌어붙은 고기의 잔여물들을 살살 긁어 와인국물(?)에 녹아들어 가도록 해 줍니다. 이 작업은 deglazing이라고 부르는데 좀 더 깊은 감칠맛을 끌어내주기 위함입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토마토 다진 것 캔 하나나 토마토를 다진 것 한 오백 그램 넣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한 두 스푼 넣고 (저는 여기에 약간의 간장도 넣어줍니다. 그러면 감칠맛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마늘 다진 것도 넣어 저어주다가 아까 겉면만 익힌 고기를 다시 팬에 넣어 주고 월계수 잎을 넣어 국물이 끓어오를 때까지 놔둡니다. 이제 미리 180도로 예열해 둔 오븐의 예열이 다 완료되면 팬 채로 뚜껑을 덮어 (그래서 전 무쇠팬을 씁니다) 오븐 중간 자리에 넣고 45분간 익혀 줍니다. 45분 동안 아이 목욕도 시키고 우리 집 개들 저녁도 주고 빨래도 개고 하며 분주히 보내면 금세 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습니다. 오븐이 땡땡땡하고 다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면 오븐 온도를 165도로 낮추어 한 시간 뭉근히 익혀 줍니다.


온 집안에 근사하면서 구수한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찹니다. 한 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책을 읽거나 옆지기와 수다를 떨거나 차를 한 잔 끓여마시면서 느긋함을 즐깁니다. 머리가 터지도록 바쁘고 산 하나 넘으면 더 험하고 높은 산 하나가 기다리고 있는 터프한 어른의 삶에서 벗어나, 맛난 요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즐기는 여유는 내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한 삼십 분 정도 지나면 쌀과 삼색 퀴노아와 거칠게 컷팅한 오트를 섞어 잘 씻은 다음 밥을 짓습니다. 보통은 리조토와 곁들여 먹지만 리조토까지 만들 여유는 없되 쿠쿠 압력밥솥은 있으니까요. 그리고 레몬 두 개와 마늘 한 톨, 이탤리언 파슬리를 한 단 꺼내어 오소 부코 위에 얹어 먹는 그레몰라타 (gremolata)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레몬의 노란 껍질 부분을 강판으로 갈아 채 썬 파슬리와 마늘과 섞어 두면 됩니다. 저는 여기에 레몬즙 약간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도 약간 섞어 두는 편입니다.


오븐이 다 되었다고 다시 울립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오븐 장갑을 양손에 끼고 무거운 커다란 무쇠팬을 꺼내어 카운터 탑 위에 올려 두고 고기를 질감을 확인해 보니, 정석대로 송아지 고기가 아니라 아직은 약간 질긴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스턴트 팟이라는 전기압력솥에 내용물을 부어 한 삼십 분 푹 더 삶아줍니다. 여기서 당황하지 않고 마치 미리 계획했다는 듯 차분하게 압력솥에 내용물을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는 내 자신의 내공이 자랑스러워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직 아무도 배가 고픈데 왜 저녁이 아직이냐며 보채는 식구는 없습니다. 삼십 분 더 느긋할 수 있습니다.


삼십 분이 지나 압력솥을 열어 고기를 확인해 보니 부들부들 촉촉합니다. 뼛 속의 골수는 부드럽고 쫀득하게 익어서 뼈 안 쪽에 잘 붙어 있습니다. 국물을 한 번 떠먹어 보니 마치 곰탕 국물 먹는 것처럼 깊고 감칠맛이 나며 구수합니다. 지친 마음을 치유받는 느낌이 듭니다.


아이도 옆지기도 맛있다며 몇 번이나 엄지를 들어 올리며 접시에 든 것을 남김없이 다 먹어줍니다. 카레 먹듯 국물에 밥을 비며 먹는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콧잔등에 땀이 솟아 있습니다. 볼이 발그레합니다. 맛이 있는 것을 먹을 때의 행복감이 얼굴 온 전체에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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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치료받기엔 너무 나이가 들고 치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할 만큼 쇠약한 나의 환자들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날까지 맛있는 것 양껏 먹으며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 주고 좋아하는 곳에서 편히 푹 잘 쉬게 해 주세요 하는 당부의 말을 꼭 덧붙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 환자들을 떠올리고 내가 좋아하는 요리 과정을 되새기며 마음이 치유됨을 느낍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편안한 마음을 안겨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문득 생각합니다. 오래 시간을 들여 깊은 맛을 끌어낸 요리를 하듯, 환자 한 마리 한 마리 공을 들여 진료하고 작은 것 하나도 허투로 넘겨 놓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해 봅니다.


평안한 주말, 별 탈 없는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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