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이 장소를 열어 봅니다.
시간이 지났고 여전히 변한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주일에 사흘 일하는 파트타임 임상 수의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일을 시작한 이 병원에서는 딱히 심금을 울리거나 기억에 남을만한 케이스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기억에 남을 만큼 골치 아픈 보호자들은 꽤나 많은 동네이긴 합니다. 아니면 경기가 안 좋아지니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져 어딜 가도 각박해진 탓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개 한 마리를 잃고 한동안 우울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아무리 수의사라 하더라도 내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차를 좀 더 본격적으로 마시게 되면서 빠진 나사 하나가 제자리로 돌아온 듯, 마음을 차차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차를 마셔봅니다. 찻자리를 펼쳐 놓고 후루룩 잘 우려진 차를 음미하면서 멍 때리는 순간이 하루를 잘 견뎌낼 힘을 줍니다. 혹은, 하루를 천천히 돌아보는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차를 마실까.
그 순간의 온도, 습도, 기분, 몸상태를 전부 천천히 고려해서 차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어 건조해 둔 다구를 꺼내서 찻자리를 차립니다. 어린 시절 소꿉장난 하던 기분도 조금 들어요. 아기자기하게 어여쁜 기물들을 정성스러운 손길로 세팅하는 순간은 허업하고 숨도 멈추어 집중합니다.
그리고는 차 봉투를 열어 살짝 흘러나오는 건엽의 향을 맡아보고 음미합니다. 조심스레 살살 차의 무게를 재는 저울에 찻잎을 담는 과정도 마치 과학 실험에 임하듯 집중해서 진지하게 실행합니다.
차에 맞는 온도의 물을 데워 다구를 먼저 따스하게 예열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따스해진 개완이나 티팟에 찻잎을 넣고 살살 흔들며 귀를 기울여 그 소리를 들을 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살짝 따스한 물로 찻잎을 적셔 먼지를 씻어내며 차를 깨우는 과정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차의 첫 포, 첫 라운드가 시작됩니다. 보통은 중국이나 대만의 우롱차, 홍차를 주로 마시는데 첫 우리기는 십 초 정도면 되니 꼭 타이머를 맞춰주고 기다립니다.
차가 다 우려 지면 늘 차를 마시는 창가로 차판째 들고 옮겨 와 머리를 비우며 차를 음미합니다. 개완이나 티팟에서 우려진 차는 공도배로 옮겨 담은 후 거기에서 작은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며 공도배를 다 비울 때까지 그저 차와 제자신만 있는 것처럼 찻잔을 후루룩 조금씩 조금씩 비워갑니다.
두 번째 라운드, 두 포째부터 서너포까지는 차의 향이며 색, 맛이 가장 아름다운 타이밍이므로 차에 더더욱 집중합니다. 핸드폰은 그저 타이머로만 쓰입니다. 책도 읽지 않습니다. 가끔 사랑하는 개가 다가와 머리를 턱 하니 제 무릎에 대고 뭔가를 달라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입니다.
그렇게 여섯 라운드 정도 마치고 나면 미련 없이 찻자리를 정리합니다. 망설임이나 미련을 갖지 않고 일어나 다구를 깨끗하게 씻어 말려둡니다. 차판도 물로 씻은 후 매번 오일을 입혀 주는 편입니다. 다 마시고 난 찻잎은 살짝 말려두면서 그 잔향을 오며 가며 즐기곤 합니다.
대학 첫 교양 영어 강의에서 읽었던 문장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The show must go on.
누구의 말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 문장 하나만큼은 지금까지도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삶은 살아있는 한 지속되어야 하고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하기에 견뎌내고 버텨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십 년 가까이 살아내고서야 그 순리를 깨닫고 받아들입니다.
다시 힘을 내어 스스로의 개인적인 삶의 향유를 위해 이것저것 해 보고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지나치게 개인적이지만은 않은 어떤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