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누구나 마음의 병을 가지고 살아간다.
작년, 6월
그토록 고대하던 육아휴직을 냈다.
그전까지 사내 벤처 프로젝트로 사외에서 스타트업 경험을 치르며 번아웃이 됐다.
마음과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메일하나 열기에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휴직 후, 괌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 웬일로 발 빠르게 숙소와 비행기 편을 다 예약하고 빨리 그날이 오기만을 고대했다. 휴직하면 다 죽었어! 맨날 늦게 일어나고, 맨날 커피숍 가고, 빈둥대며 놀아야지, 아니야 바쁘게 쏘다니며 여행 다니고 구경해야지! 룰루랄라
그러나, 인생은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
휴직 시작하자마자, 난 병에 걸렸다.
개운하고 시원할 줄 알았던 내 머리는 여전히 회사 안에 남아있었다.
할 일도 없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았고, 회사 사람들(마지막날 그때 그분이 왜 나한테 그렇게 얘기했지?), 또는 지금껏 잊고 살았던 일들(정말 어이없게 연체된 회사 도서들 같은)이 나를 불안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괜히 동료들에게 일을 만들어 전화해서 그들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또..
자꾸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이 몇 주가 되고 나는 하루종일 회사의 불안 속에 허우적대며 밤에도 잠을 못 이루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나고 회사 외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아.. 내 휴직..
내 괌..
괌 한 달 살기 계획을 수정했다. 아이들과의 약속도 있어서 줄이고 줄여 10일간의 여행으로 마무리하여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병원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강박증, 불면, 불안등의 진단을 받고,
가만, 과거에도 이랬었던 적이 있었나. 내 과거를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보았다.
시험기간, 출산 후, 긴장의 순간 들 난 가끔 이렇게 한 생각이 몸과 머리를 지배하는 일을 종종 겪었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잠을 잘 자지도, 잘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시간들, 명확히, 어떤 일시적인 사건들에 한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왜?!
시험도 아니고, 중요보고 기간도 아니고 난 이제 해피한 휴직을 하고 났는데!
쩝, 이 기간을 온전하게 totally 잘 지내고 싶은, 어느 하나 내 휴직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자꾸 내 불안을 조정하고 있는 듯했다. 완벽하게 무결한 휴직, 그러기 위해선 너를 조금이나마 걱정하게 만드는 일들은 빨리 잘라버려! 이런 불안/완벽을 추구하는 생각 바이러스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병원을 다니면서 알아낸 것이 있다.
몸과 마음은 원래 일치되지 않는다. 머리에선 "왜 자꾸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지시를 해도 마음은 심장이 고동을 친다.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사서 걱정을 하지? 해도 내 마음은 머리와 다르게 움직이더라.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머릿속에 집을 짓게 하지 말란다. 기차를 타고 창가를 바라보면 풍경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방관적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난 한 가지에 집착하여 나머지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약이더라.
필요한 약과 마음치료(잘된 것이지는 모르겠지만)를 하며 이 시간을 견뎌나갔다. 이럴 바엔 그냥 복직해야겠다 싶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니 그냥 맘 편히 돈 버는 게 낫지, 맞다. 그러려고 했는데 이런 증상을 극복해보고 싶었다. 과거에도 종종 이런 생각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끙끙 앓았던 기억들과 함께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고 싶었다. 이제 나를 괴롭히던 형체를 발견했다 말이다. 네놈이 무언지 알겠단 말이다.
지금도 싸우고 있는 중이다. 이놈은 내 평온한 일상 속에서 가끔씩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벽이 되어 나타날 때도 있고, 작은 개미처럼 등장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놈을 객관화하여 네가 바이러스인지 아니면 진짜 내가 고심해야 하는 문제인지 판단한다. 노하우가 생기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
오늘도 튀어나온 그것의 정체를 파악 중이다.
네 이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