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어릴 때도 고생하고 아내가 돼서도 고생하고 엄마가 돼서도 고생한다
"고생은 여자의 운명이지요.".... 선자는 평생 다른 여자들에게 여자는 고생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여자는 어릴 때도 고생하고, 아내가 돼서도 고생하고, 엄마가 돼서도 고생하다가 고통스럽게 죽는다. 고생이라는 말에 신물이 났다. 고생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
파친코는 일정 강점기 시대, 일본으로 건너 간 이민자들이 타국에서 겪는 차별과 고난, 정체성 문제를 개인의 희생,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려나간다. 글의 역사적 배경이나 국가의 무책임함에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역시나 주인공인 선자의 인생이 참으로 딱하며 여자의 숙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하숙집의 딸로 태어나 미혼모의 처지로 목사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그중 와세다를 졸업한 수재 아들은 자살함) 타국 땅에서 사탕가게를 하며 아득바득 살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인생.
어렸을 적부터 여자의 인생은 고통(A woman's lot is to suffer) 임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조선여인의 이야기다.
알뜰살뜰 살림을 해가며 가족들의 죽음과 헤어짐을 극복하고 타국땅에서 잘살아내는 것, 불안정한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조선여인의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엄마는 다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엄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인가.
아이들이 다 성인이 되고 부모 곁을 떠날 때, 그 헛헛함에 우울증과 무기력함에 빠진다는 엄마들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본질은 다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심정이란다. 지금이야 얼른얼른 아이들이 커서 두 손 들고 "자유다!"를 느낄 날을 고대하고 있지만 막상 그날이 오면 나도 선자처럼 아쉬움과 후회에 삶을 번복하고 싶을까.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원동력, 멈출 수 없는 힘이 가족의 힘인 걸까.
드라마틱한 줄거리도 책을 놓지 못하게 하였지만 소설의 문장력이나 내러티브 또한 읽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담백하고 담담하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며 심지어 선자의 아들 노아의 자살은 한문장으만 표현되었다. 어떤 미사여구나 형용사적 표현 없이 깔끔하게 끝나는 단어들이 오히려 짧은 문장의 여백에 내 감정을 메워지게한다.
추석이 끝난 지금, 더 선자의 인생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