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로드 되는 지식의 미래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요즘 고민이 많다.
친구관계, 학교생활, 외모와 성장 등, 질풍노동의 시기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본인이 기분이 좋은 날은 저녁 식사 후 주방에 머물러 설거지하는 나를 옆에 두고 재잘재잘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오늘 담임선생님이 어떤 말을 했는지, 반 친구가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급식반찬은 모였는지.
퇴근 후 피곤한 날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다. 얼렁 설거지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이나 하며 쉬고 싶은데, 아이가 참새처럼 짹짹거릴 때는 "응", "그래"로 일관하며 경청하는 척한다.
그런데, 요즘들어 짹짹거리던 참새가 조용하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고 분명 무언가 속에서 끙끙대고 있는 것 같은데 도통 말을 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숙제를 할 때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불러다 앉혀놓고 물어본다. 자, 난 들을 준비가 되었어.
"무슨 고민 있어?"
아이는 내가 건넨 말 한마디에 수학 학원에서 보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생일파티 때 몇 명을 불러야 하며 또 부른다면 누구를 부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 얼굴에 조금씩 돋아나는 여드름에 대한 불쾌감 등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속에서 피식 웃음이 난다. 겨우 이런 것들 때문에 끙끙 댔다고? 내가 듣기에는 별것 아니고 충분히 해결 가능한 것인데, 아이 입장에서는 너무나 풀기 어려운 숙제들인 것이다.
그래, 다 자기 나이에 맞는 고민들이 있다. 그건 별거 아니다, 맞다는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당장 지금 일들이 산처럼 높고 커다란 중요한 문제였다.
차근차근 나의 생각을 아이에게 말해준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게 하면 어때?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며 설득도 시켜본다. 다 완벽하게 동의하지는 못해도 아이는 대화 중 나름대로 자신의 해결방식을 찾은 것 같다.
문득 내가 아는 경험과 지식들을 아이에게 이식해주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런 괴로움과 고통 없이 손쉽게 문제해결이 가능할 텐데. AI가 발달하여 블루투스처럼 머리에서 머리로 바로 생각이 전달되는 미래는 불가능한 걸까. 다운로드 되는 지식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아이의 비로소 개운해진 얼굴을 뒤로하고 나의 현재 고민을 곱씹어본다. 나도 지금 벽에 막힌듯한 고민들을 안고 살고 있다. 아이처럼 지금 내 문제도 나보다 더 어른이 보기엔 별것 아니고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일까. 나이 많은 내가 되어 지금의 나를 내려다보고 싶다. 그리고 별것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문제는 해결되기 마련이라고, 언젠가 뒤 돌아봤을 때 웃어넘길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