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예상하며 맞이하는 뜨거운 안녕의 산물, 가을님,
톰: "어느 계절을 제일 좋아하나요?"
썸머: "여름이요."
톰: "여름? 정말?"
썸머: "응, 여름이 좋아. 그때는 모든 게 가능해 보여."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톰은 썸머에게 어느 계절을 제일 좋아하는지 물어본다.
만약, 나에게 누가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가을'이다.
가을.
설레는 봄과 열정의 여름을 뒤로하고 차분하게 한 박자 쉬어가는 계절이다. 겨울의 냉혹함이 오기 전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까. 차가워진 바람과 대조되는 뜨거운 햇살이 이중적이면서 양면적이다.
예전에는 싱그러운 봄이 좋았다. 밝고 따뜻하고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자신감.
지금은 거창한 시작보다는 조용하고 무결한 마무리를 선택하고 싶다.
올해 10개월 동안 잘 살아온 내 노력과 결실을 잘 보듬고 쓰다듬어 찬란하게 저물 수 있도록 끝맺음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은 이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알싸한 온도와 쌉싸름한 냄새가 몸을 환기시키고,
아직 미지근한 바람은 미처 놓지 못한 집착과 강박에서 그만 벗어나라고 마음을 어루만진다.
노랑과 빨강으로 그라데이션 돼 가는 시각적 미학과 바스락거리는 청각의 완벽한 조합인 가을은 이렇게 찬란하면서 아름답게 저물어간다.
끝을 예상하며 맞이하는 뜨거운 안녕의 산물,
가을님, 조금만 천천히 지나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