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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 Oct 13. 2021

Genesis

song by Grimes

부드러운 신스 베이스 리프가 중심이 되어 노래를 이끌고, 그 위에 다양한 요소들이 순서대로 얹어진다. 마치 피리를 부는 듯한 멜로디가 잠깐 스쳐 지나간 후 등장하는 그라임즈의 목소리는 희뿌연 호숫가의 안개처럼 묘한 분위기를 가꾸어낸다. 마냥 신비롭게 흘러가나 싶으나 여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찰박거리는 비트, 그리고 현란한 피아노 루프가 노래에 역동성을 한껏 불어 넣어준다. 마치 개러지밴드 앱에 존재하는 각종 기능을 시험 삼아 다 한 번씩 사용하려는 것처럼 랜덤하게 만들어진 트랙인가 싶으면서도, 곡이 끝날 때 즈음에는 일말의 산만함 없이 깔끔하게 빚어내는 그녀의 솜씨에 자연스레 감탄하게 되고야 만다.


음반에서 바로 뒤에 딱 붙어있는 “Oblivion”에서 그라임즈가 자신의 어두운 경험과 그것에서 비롯된 공포의 감정을 비교적 알아듣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면, 보다 드림 팝에 가까운 “Genesis”에서 그녀는 마치 음양의 조화를 이루듯 비교적 밝은 분위기 속에 모호하고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뱉어낸다. 두 섹션으로 나뉘어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가사들은 명확한 의미를 던져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분위기 그 자체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굳이 애써 분석하며 정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보다, 그저 마음 편히 노래가 만들어내는 운율과 몽환적인 무드에 정신을 맡기자. 어차피 그것이 음악의 본질적인 목적 아니겠는가.


(원 게시일: 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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