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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 Oct 13. 2021

Flesh Without Blood

song by Grimes

벌써 한 5년 전의 일이다. 나를 포함해 팝 리스너들이 열댓 명 정도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15년도 연말 결산을 진행했다. 이 노래로 그라임즈라는 뮤지션을 알게 된 나에게 이 곡은 2015년의 베스트 싱글 중 하나였고, 따라서 나는 싱글 부문 후보에 이 노래가 들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모두가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류의 팝은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노래가 뭐 얼마나 대단하냐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에 대한 나의 반론은 이것이었다. “그라임즈가 기존의 색채를 깨고 이런 평범한 팝을 싱글로 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보면 사실은 그때 전작인 Visions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서 저런 말을 한 것이 웃기긴 하지만, 내 말이 틀렸다는 생각은 없다.


굳이 그라임즈의 기존 디스코그래피, 그리고 특히 바로 전 앨범을 생각하지 않아도 “Flesh Without Blood”는 멋진 트랙이다. 한번 들어도 귀에 맴도는 직관적인 멜로디와 팝 펑크 풍의 지글대는 일렉 기타 사운드가 만나 하나의 말끔한 팝-록 트랙을 완성한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쥐어짜는 듯한 보컬과 불분명한 가사 등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독특한 요소는 역시나 그라임즈의 음악이구나 싶게 만드는 것들이다. 많은 언론이 오독했듯 가사는 얼핏 보면 연인과의 다툼을 다룬 내용 같지만, 사실은 플라토닉한 관계였던 동성 친구와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뻔한 팝 그 이상을 보여준다. 가볍게 즐길 만한 음악의 형식 속에 뮤지션으로서 일궈낸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 노래를 칭찬할 이유는 충분하다.


(원 게시일: 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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