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by Grimes
먼저 가사를 보자. 그라임즈의 말에 의하면, 무려 <대부> 시리즈에서 알 파치노가 분한 마이클 콜레오네를 성별 전환이 가능한 뱀파이어 캐릭터로 설정하고 (Flesh Without Blood 뮤직비디오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그의 입장에서 쓴 내용이라고 한다. 의도만 보면 마치 트위터에서 다소 조악한 그림이 곁들여진 2차 창작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애초에 클레어 부셰가 지금은 애니 프사를 달고 있는 지독한 오타쿠인 것을 보면 달리 틀린 표현도 아니겠다. 이렇게 설명만 보면 유치하다며 비웃고 싶어지는 발상이지만, 노래를 재생하게 된다면 글쎄. 아마 그런 비웃음은 멀리 달아나고 어느새 거센 헤드뱅잉에 대한 충동으로 머리가 가득 찰 것이다.
비디오 게임 느낌의 신디사이저 리프 아래 깔린 낮게 울리는 일렉 기타, 그리고 난폭하게 두들기는 비트를 듣다 보면 마치 F1 레이싱의 가운데로 뚝 떨어진 느낌이 든다. 시종일관 내달리는 속도감이 거대하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더해지는 “B-E-H-A-B-E”하고 쏘아대는, 그웬 스테파니의 히트 싱글 “Hollaback Girl”을 떠오르게 하는 치어리더 스타일의 훅은 따라부르고 싶어지는 캐치함을 더한다. 가녀리다가도 일순간에 매서운 발톱을 드러내며 잔뜩 포악해지는, 역동적인 변신을 일삼는 그라임즈의 짜릿한 보컬은 가사 속의 캐릭터를 그녀 스스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단연 돋보이는 곡이었는데, 그라임즈 스스로도 가장 좋아하는 트랙 중 하나로 꼽았다니 음악을 만드는 재주만큼이나 고르는 안목 또한 확실하다.
(원 게시일: 20.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