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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 Oct 13. 2021

California

song by Grimes

뮤지션과 평단의 사이가 늘 좋길 바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찬사를 받는 이라 하더라도 한순간에 전문가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버려지기 쉽고, 일단 텍스트 해석에 있어 뮤지션의 의도를 오독하고 이미지를 제멋대로 규정짓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 현실이다. 그라임즈도 비슷했다. Visions가 건네준 성공은 물론 좋은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 하나로만 규정되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에 빗대어, 인디 음악의 권위자가 되어버린 피치포크와 그 뒤를 신도처럼 따르는 음악 블로거들에 대한 디스 트랙을 만들었다.


메세지가 메세지인 만큼 공격적이기도 할 법한데, 재밌게도 노래는 꽤나 상큼하다. “우우-우, 우우, 우우우-우우” 하는 허밍으로 시작해 반복적인 코드를 타고 지글대는 톤의 기타와 찰싹대는 스네어 비트가 정교하게 맞춰져 간다. 여기에 보컬은 다소 절제된 스타일로 부드러움을 끼얹고, 훅 또한 음반의 탑 티어 수준으로 캐치하다. 그리고 이렇게 잘 가꾸어진 산뜻한 분위기는 신랄한 가사를 한껏 살아나게 한다. “그들이 내게서 보는 것,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네.” 말괄량이 같은 분위기 뒤에 숨긴 날카로운 발톱이 매력적인 곡이다. 그리고 이런 직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된 피치포크는 Art Angels에 인디계에 대한 배반 같은 딱지를 붙이는 대신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말았으니, 결국 그라임즈의 여유로운 승리다. 역시 뮤지션은 무수한 말과 언쟁보다 이렇게 음악적인 결과물로 적을 굴복시킬 때 가장 멋진 법이다.


(원 게시일: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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