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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 Oct 13. 2021

Cleopatra

song by Weezer

찰랑거리는 어쿠스틱 기타를 곁들인 채 위저는 장례식을 시작한다. 리버스 쿼모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그녀가 이제는 자신을 조종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옅어지고, 당신은 이제 꺼진 조개껍데기일 뿐/오로지 약한 이들만이 당신의 마법에 넘어갈지니” 많은 남자를 집중시키던, 나일 강의 보석과도 같았던 레이디 파라오는 이제 없다. 이제 세월 앞에 늙어버리고 차갑게 식은 몸만을 남긴 여왕이 그전의 위대한 존재와 더는 같지 않음을 건조하게 묘사하는 문장이 머금은 것은, 그녀로부터의 해방의 기쁨이 아닌 오히려 그 속박의 사라짐에 대한 아이러니한 서글픔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가사는 클레오파트라에 빗대어 함께 추억을 나누었던 여인과의 이별을 다루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하지만 텍스트를 조금 더 확장 시킨다면, 노래는 그저 사랑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추억이 담긴 모든 존재가 지닌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밴드의 그 어떤 곡보다 간결하면서도 시적으로 쓰인 문장들은 대상을 막론하고 아련한 향수를 선사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 이렇게 즐기고 있는 위저의 음악도 언젠가는 내 마음에 치미는 그 감동이 예전만 못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짜릿하게 치솟는 기타 솔로가 더하는 비범한 분위기도 물론 훌륭하지만, 이렇게 (위저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가사가 노래를 한 단계 더 끌어 올려준다.


(원 게시일: 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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