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by Weezer
괴랄함과 유치함이 날뛰는 밴드 최악의 작품 중 하나. 커버칠 수 없는 과함이 많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마냥 지루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위저의 2000년대는 참 다사다난했다.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던 Green 앨범과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Maladroit로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이는 얼마 가지 않아 뻔한 팝-록과 재미없는 트랙들로 가득 찬 Make Believe에 의해서 무마되었다. 그리고 해체설로도 이어졌던 3년간의 공백기 끝에 그들은 Red 앨범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관심 가질 만한 근거를 제공하는 음악을 다시 제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위저가 1년 만에 재빨리 발매한 후속작 Raditude는 유쾌함을 넘어선 괴랄함을 던져줬고, 그렇게 그들이 맞이한 두 번째 디케이드는 황당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Raditude가 위저의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워스트 삼대장으로 꼽히는 이유의 절반은 아마 유치한 가사일 것이다. 사실 리버스 쿼모는 늘 훌륭한 작사가는 아니었다. 물론 Pinkerton에서 필터 없이 본인의 내면을 그대로 휘갈기기는 했지만, 위저의 대표 싱글들의 가사들은 결코 세련된 편은 아니었다. “Buddy Holly”의 핵심 라인은 “나는 버디 홀리를 닮았고, 넌 딱 매리 타일러-무어야” 하는 식이었고 “Hash Pipe”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이 문장들이 낱개로 던져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래들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전자는 풋풋함과 캐치함을 겸비했고, 후자는 술에 취해 쓴 곡답게 거칠게 휘몰아치는 사운드가 가사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하지만 Raditude의 대부분은 이런 정당성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그치고 만다.
물론 모든 뮤지션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진지한, 다르게 말하면 고리타분한 음악만을 만들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리버스 쿼모의 멜로디 메이킹은 애초에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The Girl Got Hot” 같은 트랙을 보면 이는 상당히 과하다. 평범하던 소녀가 여름 동안에 무슨 일인지 완전히 섹시하게 변신해서 등장했다는, B급 하이틴 영화의 줄거리를 얄팍한 표현으로 노래하는 가사는 “오오오-오” 거리는 백 보컬과 쾌활한 기타 리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퇴행적인 모습만을 보여준다. “I’m Your Daddy”도 멜로디만 들으면 신나는 곡이지만, 클럽을 돌아다니며 젊은 여자를 노리는 남자가 된 리버스 쿼모가 외치는 “내가 너의 대디”라는 훅은 유머를 넘어서 음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도 전통악기 시타르를 사용한 힌디 풍의 트랙 “Love Is the Answer”는 그저 색다른 시도라고 넘어가기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결과물이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 등장하는 틴팝 스타 코라 콜먼이 만들고자 했던 “Way Back into Love”의 후끈하고 끈적한 버전을 연상시킨다. 전 인류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가사는 영적인 느낌 대신 음악과의 괴리감에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그리고 드러머 패트릭 윌슨이 쓴 “In the Mall”은… 말 그대로 우악스럽다. 어린 시절 백화점에서 놀며 보내던 신나는 시간을 추억하며 썼다는 배경은 귀엽긴 하지만, 투박하고 멍청하게 반복되는 훅은 듣는 이를 노이로제 걸리게 만든다. 정말 그의 말대로 앨범에 수록되지 말았어야 했다. 물질주의적인 힙합 파티 문화를 풍자하려고 썼다던 “Can’t Stop Partying”은 팝 프로덕션과 릴 웨인이라는 게스트의 참여로 인해 1차원적인 노래로 되돌아가고 만다. 리버스 쿼모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외부 참여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 예시다.
음반에서 위저는 한껏 우스꽝스러운 meme 밴드로 커리어를 이어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 Raditude의 좋은 곡들은 그들이 이런 가벼운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은 순간에 탄생한다. 그저 신나게 오늘 밤을 친구들과 다 같이 즐기겠다는 “Let It All Hang Out”이나 우리가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며 애인을 붙잡는 “Trippin’ Down the Freeway”는 세련된 가사는 아니지만, 캐치프레이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직관적인 멜로디가 제대로 빛을 발한다. “I Don’t Want to Let You Go”는 말랑말랑하고 간단한 50년대 스타일 프로덕션 속에 멜랑콜리한 무드를 피워내면서 혼란스러운 앨범을 그나마 열심히 수습해주는 엔딩 트랙으로 자리하고, “내가 넘어질 때마다 당신은 나를 잡아 일으켜주죠”라 말하는, 잔잔하게 시작해 점차 감정이 폭발하는 “Put Me Back Together”는 애끓는 리버스의 보컬이 전달하는 짙은 호소력으로 앨범의 숨은 하이라이트가 된다. 디럭스 에디션의 추가 트랙인 “The Prettiest Girl in the Whole Wide World”와 “The Underdogs” 같은 트랙들도 담담하게 피워내는 구슬픈 정서와 함께 본판의 곡들을 훨씬 웃도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나마 Raditude가 지니는 의의는, 실소에 가깝지만 그래도 웃음만은 던져준다는 사실이다. 썩 훌륭한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존의 틀을 조금은 벗어나려고 시도했음을 엿볼 수 있고, 분명 끔찍한 가사들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다수의 멜로디만은 거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뛰어오른다. 그리고 이렇게 격렬하게 어수선한 판을 벌이고 있으니, 부정적인 평가라고 할지라도 얘기할 거리는 많아진다. 당장 이 글만 봐도 분량이 상당하지 않은가. 그냥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보다는 망가져서 대화거리라도 되는 밴드로 생존하는 것이 당시 그들의 목표였다면, 그것만은 성공한 듯 보인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 그들의 승리다.
(원 게시일: 20.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