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by Katy Perry
새로운 마음가짐과 함께하는 새 출발. 틀을 깨고 나오는 거창한 변혁은 없지만, 자신이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을 미약하게나마 깨닫고 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만큼이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살짝 주춤한 순간은 있었어도 순조롭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케이티 페리는, 모두가 아는 2017년의 Witness로 상업적, 비평적인 방면 모두 뼈아픈 실패를 겪었다. 방송 활동을 보면 여전히 유명인으로서의 힘은 남아있었지만 뮤지션으로서 그녀가 가진 힘은 화려했던 불꽃처럼 빠르게 소진되었고, 그녀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다. 그리고 이는 여태껏 별다른 두려움 없이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진행했던 케이티 페리를, 싱글들을 연이어 발매하며 시장 반응을 조사하는 소극적인 이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전작의 여파에서 방황 아닌 방황으로 3년을 보낸 그녀의 복귀작은, 이런 고난의 시간 끝에 그녀를 다시 원점으로 위치시킨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녀의 전성기 음악과 가장 근접했던 스타일의 “Never Really Over”가 좋은 평가와 함께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으니까 말이다. 많은 동료 뮤지션이 팝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의 탐색을 거듭하는 상황 속에, 그녀는 여전히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가리켜 단순히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글쎄, 조금 부당하게 보인다. 소신대로 행했던 결과물로 이미 한번 쓴맛을 본 이상,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을 포기하고 가장 잘하는 방향에 다시 집중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다.
앨범을 대표하는 싱글은 오프닝 트랙 “Never Really Over”와 리드 싱글이었던 “Daisies”, 그리고 타이틀 트랙인 “Smile”일 것이다. 전형적인 케이티 페리 스타일 노래였던 이들과 달리, 나머지 수록 트랙들은 어느 정도는 예상치 못한 면모를 보여준다. 제목부터 한 쌍을 이루고 있는 듯한 초반부의 두 트랙 “Cry About It Later”와 “Teary Eyes”는, 뜻밖에도 2019년 초 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싱글 “365”를 생각나게 한다. 슬픔은 뒤로하고 지금을 즐기며 춤추겠다는, 다분히 Witness 앨범 활동 이후 그녀의 심리를 반영하는 가사와 함께 케이티 페리는 그 앨범의 어두운 단조 멜로디와 80년대 댄스 팝의 신스 텍스쳐를 다시금 가지고 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앨범의 대다수 트랙처럼 마냥 공허하고 답답하게 들리기보다는 간결함의 매력이 돋보인다. 탁한 음색의 보컬은 여전히 단점으로 자리하지만, 짜릿함을 머금은 기타 솔로나 유로 비트 스타일의 리듬이 이를 어느 정도는 상쇄하는 모습을 보인다.
Smile의 전반부 마지막을 장식하는 “Not the End of the World”는 그녀의 (일반적이지 않았던) 기존 히트곡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곡이다. 케이티 페리의 메가 히트 싱글 중 하나인 “Dark Horse”, 그리고 그녀가 이기 아질리아와 리타 오라에게 건네 싱글 차트 3위의 성적을 거둔 (올해 그녀의 데모 버전이 유출된) “Black Widow”를 연상시키는 이 트랙은 앨범이 가진 가벼운 무드, 그리고 긍정주의와는 살짝 상충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이 팬데믹 상황을 생각하면, 성대하게 펼쳐지는 파괴적인 분위기 속에서 “끝이 아니야, 이게 세상의 끝은 아니라고”를 외치는 이 노래는 역으로 가장 시의적절하게 들리기도 한다. 비트로 채워진 드롭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녀와 잘 어울리고, 오랜만에 꺼내든 스타일임에도 전성기 시절의 카리스마를 훌륭하게 재현되고 있다.
신선함을 보여주는 곡들은 의외로 힘을 덜 들이고 만든 듯한 곡이다. 자신의 회복능력을 거듭 외치는 파워 발라드 “Resilient”가 밋밋함과 진부함에 함몰되어 있고, 해리 스타일스의 “Adore You”를 떠오르게 하는 곡이라고 스스로 코멘트 했던 “Champagne Problems”가 조잡한 바이올린 사운드와 특색 없는 후렴으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반면 크게 에너지를 넣지 않은 듯한 “Tucked”와 (먼저 싱글로 발매되었던) “Harleys in Hawaii”, 그리고 “Only Love”가 깊게 다가온다. 일렉트릭 기타가 부여하는 흥겨운 리듬에 “나나나, 나나나-나” 거리는 살랑이는 훅이 돋보이는 “Tucked”는 지금의 케이티 페리에게 가장 필요한, 도회적이고 세련된 여인의 이미지를 새로이 부여한다. 특유의 끈적이는 그루브가 돋보이는 “Harelys in Hawaii” 또한 기대 이상으로 앨범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다. 자신을 감쌌던 좌절감 속에서 표현해야 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Only Love”는 프로덕션의 다이나믹함은 부족하지만, 거창함을 버리고 솔직담백하게 써낸 가사가 큰 울림을 자아낸다. 무게감을 덜어내니 그녀의 보컬에서 답답한 느낌 또한 같이 줄어들고 있다.
앨범의 맨 끝에서 “What Makes a Woman”은 부드러운 일렉트릭 기타 선율로 대미를 장식한다. 첫 싱글이었던 “Daisies”처럼 자연주의적인 느낌을 내뿜고 있지만, 파워풀한 보컬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그 곡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함으로 밀고 가면서 진중함을 더한다. 화려하지 않은 음악으로 내면을 드러낸다는 고정관념에서는 벗어나지 않는 곡이다. 하지만 애초에 케이티 페리라는 가수의 근원적인 매력이 이러한 팝의 스테레오타입을 충실하게 따르는 사실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Prism 앨범의 후반부 트랙들이 가졌던 온화한 분위기를 따르면서 노래는 그녀에게 적합해 보이는 미래 비전 또한 훌륭하게 시사한다.
본인이 많은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케이티 페리는 히트 싱글을 써내려는 기존의 강박관념에서 다소 벗어나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직업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그녀의 변화된 태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Smile에는 그런 심리를 따르듯 히트할 요소가 대놓고 드러나는 킬링 트랙은 부재하지만, 동시에 이런 비워냄을 통해 그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음반 단위 구성력을 보여준다. Teenage Dream 앨범만큼의 극도로 뛰어난 팝송은 확실히 없으나, 확실하게 끔찍한 노래 없이 음반 단위로 원만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뒤늦게, 그리고 느린 속도로나마 그녀가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비록 케이티 페리의 커리어에서 Smile이 뚜렷하게 기억될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앨범이라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다음 단계를 위해 열심히 고민 중인 그녀의 모습을 담아내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원 게시일: 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