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rley

album by Weezer

by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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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나칠 정도로 그윽한 눈빛에 겁먹지 말자. 발매된 지 10년, 다양한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서 크게 기억되는 음반은 아니지만 듣다 보면 의외의 알찬 매력을 가지고 있는 앨범이다.

데뷔부터 함께했던 게펜 (Geffen) 레코드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위저는 인디 레이블 Epitaph에서 그들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 리버스 쿼모는 앨범 아트워크에 타이틀에 트롤링을 시도했고, TV 시리즈 <로스트 (Lost)>에서 “헐리” 역으로 나온 배우 앤디 가르시아의 사진을 그대로 앨범 커버에 실으며 그의 이름인 Hurley를 제목으로 삼았다. 당시 밴드의 머천다이즈를 제작하던 미국의 의류 회사 Hurley가 그들의 스튜디오 비용을 대준 탓에 이름이 정해졌다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벨의 발언으로 팬들에게서 “헐리 게이트”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의 착오로 밝혀졌다. 사실 앨범 커버에 대문짝만하게 찍힌 앤디 가르시아의 푸근한 얼굴이, 리버스 쿼모와 같이 찍은 사진을 자른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냥 “사람이 좋아 보여서” 앨범을 그렇게 완성한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비범하면서도 흉악한 아트워크/제목의 영향과 당시 그들이 Blue 앨범과 Pinkerton 앨범의 전곡을 연주하는 Memories 투어를 진행하기 바빴던 탓에, Hurley는 위저의 커리어에서 흔히 간과되는 작품이다. 상업적으로도 딱히 괄목할 만한 성과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다소 미미한 인지도에 비해, 그냥 지나쳐가고 끝날 음악은 아니다. 앨범은 한동안 메인스트림 팝을 향한 열망에 휩쓸리고 meme 밴드 컨셉에 스스로 먹혀버린 위저를 본연의 파워풀한 록의 영역으로 다시 복귀시키면서, 밴드가 맞이한 세 번째 디케이드의 시작을 성대하진 않아도 순조롭게 알렸다.


물론 전작 Raditude를 연상시키는, 어설픈 유머를 추구하는 곡들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는 있다. 제목부터 실소를 자아내는 “Smart Girls”는 캐치한 훅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가벼워 보이려는 가사로 인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유치함과 풋풋함 사이에서 농도 조절을 실패한 “The Girl Got Hot”의 후속편 느낌인데, 그만큼 중독적이지도 않다. 양말 (socks)을 잘못 발음하는 딸아이의 습관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Where’s My Sex”는 그야말로 너무 멀리 나갔다. 스탠다드 기준으로 10트랙을 딱 맞춘 볼륨에서 노래 하나를 통으로 짓궂은 농담에 할애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낭비 아닌가. 요즘 말로 뇌절이다.


이런 뚜렷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Hurley는 매력적인 곡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첫 싱글인 오프닝 트랙 “Memories”의 꽉 찬 후렴은 밴드의 초기 히트 싱글인 “Buddy Holly”가 지닌 패기와 가히 비견된다. 뒤이어 등장하는 “Ruling Me”의 윙윙대는 기타 톤은 중독적인 리프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며 곡에 청량한 속도감을 부여하고, 다소 무거운 “Trainwrecks” 또한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존재감을 뽐낸다. 격한 감정이 많이 실린 “Run Away”의 밝은 멜로디 속에 풍기는 멜랑콜리함도 매력적이다.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마냥 풋풋하게 부르던 기존의 창법에서 리버스 쿼모가 거친 방향으로 변화를 다소 줬다는 사실인데, 대부분은 이것이 노래의 전반적인 무드와 효과적으로 맞물리고 있다.


앨범의 확실한 하이라이트는 전반부에 하나, 후반부에 하나씩 있다. 먼저 “Unspoken”은 어쿠스틱 프로덕션으로 힘을 계속 모아 뒀다가 후반부에서 그 에너지를 강하게 발산하며 격정적인 카타르시스를 내뿜는다. 첫 앨범의 엔딩 트랙인 “Only in Dreams”의 웅장함이 느껴지면서도, 6년 후 White 앨범의 마지막 곡 “Endless Bummer”의 청사진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Hang On”은 위저 특유의 캐치한 팝 멜로디를 그대로 들려준다. 소심하지만 힘을 내어 “다시 볼 때까지 기다려, 친구 이상이 될 테니까”라고 선포하는 이 러브 송에는 친근하게 따라부를 수 있는 멜로디를 써내는 리버스 쿼모의 능력이 그대로 실려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일렉 기타 중심의 사운드를 대신해서 들어간, 배우 마이클 세라가 연주한 만돌린 선율이 신선함을 가득 불어 넣어준다.


스탠다드 에디션을 끝내는, 로-파이 질감이 강하게 살아있는 서정적인 “Time Flies” 뒤로 이어지는 디럭스 트랙들은 아쉽게도 큰 영양가를 지니지는 못한다. 콜드플레이의 히트 싱글 “Viva La Vida”의 라이브 버전은 별로 매력 없는 커버에 그치고 말고, 그들이 발매한 월드컵 비공식 응원가인 “Represent”의 새로운 버전은 그저 무난하다. 그나마 어린이용 TV 쇼 <Yo Gabba Gabba!>에서 그들이 선보인 “All My Friends Are Insects”가 의외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지렁이, 나비 모두 내 친구들이라는 귀여운 가사에 짧으면서도 흡입력 있는 멜로디가 합쳐지니, 위저의 수많은 장난식 노래 중 몇 안 되게 들어줄 만한 노래로 남는다.


마구 내달리기에 바빠 완급조절이 부재한 것과 모든 음악이 골고루 고른 퀄리티를 자랑하지는 못한다는 사실, 보컬을 제외하면 색다른 시도 또한 부족한 점이 겹쳐지는 Hurley는 위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상위권에 위치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도 지금 마냥 거의 언급 없이 넘어가고 끝날 작품이라기엔 아쉬운 구석이 있다. 지금보다 활발한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뭐 이런 식의 거창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퇴보와 답습으로 보일 여지를 최소화하면서, 2010년대 초중반 위저가 보여준 초창기 스타일로의 회귀를 은근히 그럴싸하게 예고한 점에 있어서 앨범은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원 게시일: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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