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by Carly Rae Jepsen
팝을 받아들인 풋내기 포크 뮤지션. 미국 시장에서의 메가 히트를 맞닥뜨리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2008년, Tug of War로 캐나다 음악 씬에 정식으로 들어선 칼리 레이 젭슨은 2011년 차기작의 리드 싱글로 “Call Me Maybe”를 발매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14일 발매일을 목전에 두고 그녀와 604 레코즈 레이블 측은 아이튠즈에 프리뷰까지 공개되었던 다섯 곡 - “Lost and Found”, “Alice in Wonderland”, “Dear Julien”, “Europe”, “Angels” - 을 제외해버리고, 이를 스튜디오 앨범에서 여섯 곡 볼륨의 EP로 줄여버렸다. 1차로 간을 보고, 그 후에 앨범을 제대로 공개하려는 심산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저스틴 비버가 트위터에 노래를 소개하고, 미국 시장에서 바이럴 히트를 치게 되고, School Boy 레코즈의 스쿠터 브라운이 그녀를 영입한 것이다. 그렇게 불과 7개월 후에 칼리 레이 젭슨의 첫 월드와이즈 릴리즈 Kiss가 발표되었고,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이었을 Curiosity는 그렇게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의 진출이 없었다면 지금의 칼리 레이 젭슨도 존재하지 않겠지만, 캐나다에서 Curiosity를 제대로 공개했을 평행우주 속 그녀의 모습을 종종 그리게 되는 것은 남겨진 여섯 곡이 꽤 괜찮기 때문이다. 전작의 “Sour Candy”에 이어 조쉬 램지가 프로듀싱한 “Call Me Maybe”를 제외한 다섯 트랙은 전 앨범의 나머지 아홉 곡을 맡았던 라이언 스튜어트가 그대로 프로듀싱을 담당했는데, 그 덕분에 EP는 첫 앨범의 포크 멜로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신스팝의 색을 받아들인 모습을 보여준다. “Talk to Me”는 선명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노래를 리드하는 가운데 그 위에 덧입혀진 가벼운 신스 사운드가 이러한 과도기적인 면을 가장 잘 느끼게 해준다. 적재적소에 들어간 바이올린과 약간은 허스키한 팔세토 보컬이 인상적인 “Just a Step Away”도 매력적이다.
EP에서 유일하게 칼리 레이 젭슨이 단독으로 쓴 “Picture”는 연애 이 전 썸타는 단계에 선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달콤하게 풀어낸다. “네가 만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지 내게 묻는다면, 난 바로 언제 볼 거냐고 되물을 거야.” 번호는 주겠지만 연락은 그쪽에서 먼저 하라고 했던 “Call Me Maybe”와 마찬가지로, 노래는 소극적이면서도 적극적이게 되는 심리를 잡아내면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끌어낸다. 로맨스에서 짙은 캐릭터를 만들지 않고 누구나 자신을 그 장면에 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 그녀의 작사 스타일은 이미 여기서부터 사실상 완성된 셈이다. 타이틀 트랙 “Curiosity”는 이례적으로 잘못 흘러가는 로맨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쫀쫀한 베이스라인 덕에 앨범에 튀지 않고 잘 녹아 들어간다.
이런 사랑 노래들이 칼리 레이 젭슨이 가진 특성을 잘 살린 탓에, 마지막 트랙으로 실린 조니 미첼의 포크 클래식 “Both Sides Now”의 커버는 사뭇 당황스럽게 들린다. 다른 노래들과 유사한 신스팝 프로덕션을 그대로 유지하고, 보컬도 그저 말랑하게 부르는 탓에 그녀의 버전은 본 노래가 가진 깊숙한 메세지와 상당한 괴리감을 빚어낸다. 과장을 약간 섞어서 어린이용 동요 버전처럼 들리기도 한다. 커리어의 시작점이 포크였고 캐나다의 여성 포크 뮤지션의 대명사로 기록되는 조니 미첼의 입지를 생각해 보면 본인의 뿌리를 염두에 둔 것이 보이지만, 그런 의의를 제외하면 별로 좋은 노래 선정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감정적인 깊이가 좀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uriosity는 훌륭한 장르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상당히 많은 것이 과했던 Kiss 대신, 칼리 레이 젭슨의 커리어에서 이 작품이 진정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포크에서 팝으로 넘어가는 그 분기점의 역할도 탁월하게 수행하고, 노래 자체도 소소하게 라디오에서 히트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늘 그렇듯 의미 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질 만큼 충분히 괜찮은 음반이다. 그저 언젠가는 그녀가 남은 다섯 곡과 함께 이 앨범을 정식으로 다시 발매해주길 바랄 뿐이다.
(원 게시일: 2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