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 / album by Weezer

by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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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거듭한 방황 끝에 돌아온 출발점.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음반은 위저의 커리어에서 확고한 분기점으로 자리한다.

부푼 마음으로 메인스트림 팝을 향해 나아갔던 Raditude의 실패로 위저의 2000년대는 초라하게 마무리되었고, 2010년대를 맞이하여 밴드는 다시 약간의 록 스피릿을 주입한 Hurley를 들고 나왔으나 음반은 결과물과는 별개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러한 잔해 속에 세워진 밴드의 4년 만의 복귀작인 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는 한동안 어지러웠던 위저의 커리어를 일시적으로나마 정리한다. 한동안 그저 자기 갈 길 바빴던 리버스 쿼모는 드디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듯) Blue와 Green 앨범의 프로듀서였던 릭 오케이섹을 다시 대동했고, 이러한 타협은 뜻밖에도 그들에게 짜릿한 부활을 안겨줬다.


음반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씁쓸하게 노래하는 “Ain’t Got Nobody”로 시작한다. 모두가 떠나간 듯한 그 빈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마침내 리버스 쿼모는 팝과의 외도 전적에 대해 열심히 속죄한다. “(팬 여러분) 당신들이 그토록 필요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 첫 싱글인 “Back to the Shack”의 가사다. 이렇게 팬들을 향해 조아리며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갈 것, 그리고 자신들은 록 세계 안에 있음을 열심히 부르짖는 그는 “Eulogy for a Rock Band”에서 우리의 곁을 지나가 버린 록 밴드들을 향해 추모사를 읊기도 한다. “아디오스,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록 밴드여.” 이는 이미 떠나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록의 전성기에 대한 작별 인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는 팬과 대중들의 관점에서 보는 위저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초심으로 돌아오겠다는 선포처럼 EWBAitE에서는 위저의 너드-록 밴드 이미지를 창조해낸 애달픈 사랑 노래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평소 그들다운 가사의 “Lonely Girl”은 다른 트랙들에 비하면 특출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배 꼬지 않는 직관적인 멜로디 전개와 기타 솔로가 돋보이는 곡이다. 인트로의 휘파람 소리가 이목을 끄는 “Da Vinci”는 “다 빈치도 그대를 그리지 못하고, 스티븐 호킹도 그대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로제타석도 그대를 해석하지는 못해요”라는 사랑스러운 후렴과 함께 캐치한 멜로디가 돋보인다. 그리고 평소 위저를 롤모델로 삼던 Best Coast의 보컬 베타니 콘센티노 (Bethany Consentino)와 함께 듀엣을 이루는 “Go Away”는, 찌질하면서도 우스운 가사 속에 어우러지는 리버스 쿼모와 그녀의 보컬이 탁월한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 위저가 여성 보컬과도 괜찮게 어울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다.


본작의 또 다른 강점은 기존의 그들답지 않게 유치함을 다소 덜어내고 잘 다듬어낸 가사에 있다. 영국군의 침공을 알리며 미국 독립에 공을 세운 폴 리비어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The British Are Coming”은 역사적인 사건을 스토리텔링하듯 쓴 가사가 흥미를 자아낸다.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Foolish Father”가 자아내는 울림은 여태 위저의 클로징 트랙 중에서 단연코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앨범의 시작부에서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이야기하던 리버스 쿼모는 맨 끝자락에서 그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위치하면서 본인의 딸에게 부족한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부르짖는다. 이러한 진솔함이 구심점을 이루고 있으니 강렬한 사운드가 제대로 힘을 얻는다.


밴드의 여러 괴작 중에서 좋은 트랙으로 꼽히는 곡들이 어줍잖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경우였다면, 반대로 EWBAitE는 기존의 스타일을 따라가면서도 일부를 비틀어낸 트랙들이 크게 빛을 발한다. 전형적인 위저 스타일 같으면서도 약간의 훵키함이 섞인 “I’ve Had It Up to Here”가 그중 하나다. 곡은 Pinkerton을 비롯한 위저의 많은 “다른” 작품들에 대한 팬들의 따가운 반응에 향한 그의 분노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스타일로 이러한 내용을 노래하는 모습 속에서는 리버스 쿼모의 반항 정신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Cleopatra”다. “당신은 더는 날 조종할 수 없소, 클레오파트라”라고 부르짖는 가사는 비참한 사랑 노래처럼 들리기도,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개척자의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기존의 위저 음악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근사하고 시적인 노랫말이다. 여기에 어우러지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거대한 기타 솔로는 기묘한 기운을 가득 내뿜는다.


대다수의 위저 앨범이 그렇듯이 EWBAitE 또한 열 트랙의 볼륨으로 완결된다. 하지만 “Futurescope Trilogy”라고 이름 붙여진 세 곡의 연작은 이 훌륭한 음반을 환상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1장 “The Waste Land”, 2장 “Anonymous” 그리고 3장 “Return to Ithaka”로 이어지는 이 짧지만 장대한 여정은 위저가 여태껏 보여준 그 어떤 결과물보다도 짜릿하고 아름답다. 연주곡으로 시작해 추상적인 가사의 노래를 거쳐 다시 연주곡으로 끝나는 전개는 현란하게 놀리는 기타와 함께 말 그대로 전율을 안기고, 앨범에서 반복되는 긍정의 메세지는 오히려 가사가 없는 이 자리에서 더 확실하게 울려 퍼진다.


최근의 작품들을 보면 또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는 위저가 좋은 음악을 “못” 만드는 밴드가 아니라 매번 같은 음악을 “안” 만드는 밴드임을 증명해주는 작품이다. 클래시컬한 위저의 음악 속에서 또 한 번 진보를 이뤄냈으니, 앨범은 참으로 영리한 기획의 산물이다. 리버스 쿼모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잘 꿰뚫고 있다. 그리고 팬들의 다섯 수 앞까지도. 앨범은 위저가 다시 엉뚱한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하더라도 “결국 다 괜찮을 것”이라는 메세지를 설파하는 작품이고, 이는 충분히 믿어 볼 만하다.


(원 게시일: 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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