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by Carly Rae Jepsen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타, 통기타를 다시 짊어지고 첫 발걸음을 내딛다. 지금의 능수능란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설프지만은 않다.
당신이 2012년 여름 전 세계를 휩쓸었던 메가 히트 싱글 “Call Me Maybe” 하나로 그녀를 기억하든, 아니면 운 좋게도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는 지금의 신스팝 뮤지션 칼리 레이 젭슨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든 그녀의 첫 음반이 포크 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꽤 놀랄 것이다. 현재 그녀가 들려주고 있는 음악의 중심에는 신디사이저가 자리하고 있지만, 그녀의 2008년 첫 음반인 Tug of War에서 메인을 꿰차고 있는 것은 바로 어쿠스틱 기타다. 전반적으로 언플러그드를 지향하는 앨범은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칼리 레이 젭슨의 음악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나 여기에서 오는 의외의 매력 또한 존재한다.
앨범 얘기에 잠시 앞서 칼리 레이 젭슨의 삶을 한번 쫓아가 보자. 어릴 적부터 뮤지컬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학교 뮤지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그녀는 음악과 관련한 진로를 찾아 나선 끝에 대학교에서 공연예술을 배우게 된다. 카페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쉬는 시간에 부모님에게 선물 받은 기타로 노래를 작곡하고, 길거리에서 한 주에도 수차례씩 공연을 펼치며 그녀는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2004년도에는 Dear You라는 세 곡짜리 EP를 자비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07년도에 그녀는 인생에 첫 터닝 포인트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학교 교사의 권유로 캐내디안 아이돌 시즌 5에 참가해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기타를 짊어지고 부른 본인의 자작곡인 “Sweet Talker”로 예선에 합격한 칼리 레이 젭슨은, 방송 내내 살아남아 최종 순위 3위까지 오르는 쾌거를 기록했다.
살짝 아쉬운 기록일 수는 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스스로 회고하듯 “본인의 이름을 널리 알리면서 끔찍한 계약에 발이 묶이지 않을 수 있던” 좋은 결과였다. 운 좋게도 그녀의 데모 테이프는 레이블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듬해 2008년에 이 첫 번째 앨범, Tug of War를 캐나다에 발매하며 칼리 레이 젭슨은 뮤지션 커리어를 정식으로 내딛었다. 예선을 제외하면 생방송에서 그녀가 펼친 무대는 대부분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에 중점을 둔 스탠다드 팝 스타일이었기에 이런 포크 장르는 약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의 음악적 뿌리는 본래 기타 팝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앨범은 하이라이트를 아껴두지 않고 초반부터 바로 들려준다. 동요 “There’s a Hole in My Bucket”을 일부 참조한 오프닝 트랙 “Bucket”은 가사처럼 말 그대로 기분 좋은 피크닉 송이다. 말랑말랑한 기타 선율은 쨍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해수욕장에서 여름을 만끽하는 듯한 느낌을 가득 내주고, 캐치한 훅은 상쾌함을 전방위로 뿜어낸다.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어지는 타이틀 트랙 “Tug of War”는 간단한 코드 진행 속에서 매혹적인 멜로디를 뽑아내며, 특히 그루브 넘치는 아웃트로의 기타 리프가 큰 매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바로 외워지는 중독적인 훅을 겸비한 3번 트랙 “Money and the Ego”에서는 단단한 베이스 사운드와 깔끔한 칼리 레이 젭슨의 보컬이 좋은 균형감을 이룬다.
초반부 트랙들이 가지는 임팩트가 다소 큰 탓에 앨범의 중반부에 있는 대다수 트랙은 멜로디 면에서는 크게 두각을 내는 편은 아니나, 그래도 복잡한 감정을 살며시 건드리는 가사들로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당신 안에는 방이 있고, 난 마침내 그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라며 연인 간 소통의 부재를 다루는 “Tell Me”의 은유는 썩 그럴싸하게 들리고, 알고 보니 전혀 중요치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걱정과 세속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으로 주변에 소홀했던 자신을 고백하는 “Worldly Matters”의 가사는 서투를 수는 있어도 지금의 칼리 레이 젭슨의 음악보다 어쩌면 더 깊게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Hotel Shampoos”에서는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연인관계를 노래하는 등 대체로 로맨스에 치중한 이후의 작품보다 폭넓은 소재 선정을 보여준다.
다만 이후 발매되는 Curiosity에 실린 “Both Sides Now”가 그랬듯이, 존 덴버의 곡을 커버한 “Sunshine on My Shoulders”는 큰 감흥을 전달하지 못한다. 앨범의 각종 세션의 녹음은 전부 프로듀서 라이언 스튜어트가 도맡아 하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칼리 레이 젭슨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을 보여줄 수 없는 커버 곡은 다른 트랙들과 비교했을 때 매력을 뽐낼 기회가 현저히 떨어진다. 지나치게 예쁘장하게 보이려는 사운드 구성도 흥미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앨범에서 유일하게 조쉬 램지가 프로듀싱을 맡은 엔딩 트랙 “Sour Candy”는 확실히 대중적인 선율을 띄고 있지만, 후렴에서 힘을 많이 준 칼리 레이 젭슨의 보컬이 오히려 풋풋한 매력을 일부 깎아 먹고 있다. 차라리 강한 선율은 없다 하더라도 부드러운 보컬을 담아낸 “Heavy Lifting”이나 끈적한 진행이 돋보이는 “Sweet Talker” 같은 트랙들이 앨범 내에서 더 알차게 자리하고 있다.
사실 Tug of War가 지니는 가장 큰 한계점이라면 오디션 스타의 적당한 데뷔 앨범 그 이상의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라이언 스튜어트의 프로덕션은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긴 하나, 동시에 흔한 포크 팝 사운드 이상을 들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음반은 집중하지 않는다면 귓가에 머물 자리를 쉽게 찾지 못하고 금세 빠져나간다. 그래도 앨범은 처음부터 그녀가 보유하고 있었던 훌륭한 멜로디 메이킹 능력과 동시에 지금보다 더욱 대담하게 느껴지는 시도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둔다. 전반적으로 그리 대단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하나 어디까지나 첫 작품이니까. 어쨌거나 별 고민 없이 가볍게 듣기에는 적당한 앨범이다. 만약 30분 정도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을 때, 지하철이나 카페 같은 공공장소에 있어 몸이 지나치게 들썩일 것 같아서 E•MO•TION: Side B를 돌리기엔 살짝 고민되는 그런 상황에 칼리 레이 젭슨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면 고를 만한 음반이란 얘기다.
(원 게시일: 2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