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Human

album by Weezer

by 감귤
Van Weezer가 흡수한 기타 에너지의 빈자리를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채웠다. 전혀 위저답지 않은 구성이나 역시나 그들다운 성공이다. 음반은 벌써 밴드 커리어의 중요한 이정표로 우뚝 섰다.

“위저의 음악에서 일렉 기타가 빠진다면?” 물론 그전에도 일렉 기타를 다른 것이 대체한 적은 있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한 Pinkerton의 엔딩 트랙인 “Butterfly”나 아예 인도 전통악기인 시타르를 사용한 “Love Is the Answer” 같은 곡들 말이다. 하지만 트랙 단위에서 그쳤던 기존의 경우에서 더 나아가, 위저는 이러한 시도를 음반 단위로 넓혀 38인 구성의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챔버 팝/바로크 팝 음반 OK Human으로 이러한 질문에 대답했다. 재밌게도 클래식 위저 스타일을 훌륭하게 재현했다며 칭찬받았던 2016년 White 앨범의 프로듀서 제이크 싱클레어와 함께 말이다. 앨범의 제목이 패러디하고 있는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가 록에 전자 음악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결합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는 모습이다.


컴퓨터라는 단어 대신 인간이 들어간 제목은 음반이 순수 사람의 인간으로만 연주한 악기로 채워졌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음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춘 가사로 외로움과 고뇌의 감정을 노래한다. 그리고 여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코로나가 낳은 지금의 판데믹에 대한 내용이 자칫 피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텍스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가장 대표적으로 첫 싱글로 공개된 따스한 감촉의 오프닝 트랙 “All My Favorite Songs” 속 아웃사이더 화자의 스스로에 대한 자조 섞인 고찰은, 사람과의 접촉을 제한하는 대 질병 시대로 인해 우울증이 더욱 심해진 현대인의 모습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캐치한 후렴 “Oh-oh-oh my god / What’s happening to me?”에 맞춰 매일이 똑같이 굴러가는 삶에 대한 불만을 거세게 토로하는 “Aloo Gobi”에서는, 그런가 하면 역설적으로 과거 지루하게 느꼈던 일상에 대한 리버스 쿼모의 그리움이 서려 있다.


앨범이 포착하는 시대정신에는 어느새 우리 삶을 뒤덮은 디지털 문명 또한 포함된다. 음반의 2막을 여는 중심 트랙 “Screens”는 다소 직설적인 어조로 “현실 세상이 죽어가고, 모두가 클라우드로 옮겨가는” 시대에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지나치게 몰두해버린 현대인을 꼬집는다. 마치 뮤지컬 넘버 같은 경쾌한 트랙이지만, “모두가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어”라고 라는 후렴에는 분명한 씁쓸함 또한 같이 피어오른다. 다소 톤 다운된 “Numbers”는 상당히 구슬픈 멜로디 속에 사람들이 숫자로 매겨지는 지금의 세상 속 뒤떨어진 자들을 위한 찬가다. 웃음 속에 슬픔이 보인다는 후렴을 지나 등장하는 브릿지의 가사는 가히 발군이다. “나는 1, 나는 0 (…) 하지만 숫자들은 산출되지 않아요/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둘이 하나가 될 때.” 이 뒤에 내뱉어지는 피보나치 수열 - 1, 1, 2, 3, 5, 8, 13 - 은 이진법 데이터로 점령된 사회에서 사람 간의 사랑이 이런 한계를 깨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OK Human이 단순히 이런 현대문명에 반기를 들고 원시주의를 향해 달려나가는 작품은 아니다. 소설 <분노의 포도>를 감상하며 홀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의 “Grapes of Wrath”를 보자. 리버스 쿼모가 택한 것은 아날로그 시대의 유산인 종이책이 아닌, 기술 발전의 산물 중 하나인 전자책 플랫폼 Audible의 오디오 북이다. 그는 이미 우리의 삶에 디지털 기술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이를 완전히 없앨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무의미한 반발심을 가지는 대신, 이런 현실 속에서 이렇게나마 주도권을 쥔 채 기술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리버스 쿼모의 철학이다. 마치 그가 작곡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이러한 주제의식들 속 분명한 공통점은, 바로 이 모든 것들을 다분히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Aloo Gobi”의 후반부에서 리버스 쿼모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며 불과 1~2년 전 삶에 향수를 느끼는 이들에게 공감을 표하고 있고, 다소 비판적인 논조의 “Screens”에서도 노래를 끝내는 것은 디지털 세상에 대한 반기의 구호가 아닌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립다는 문장이다. 이런 그의 태도는 “Bird with a Broken Wing”에서 가장 크게 폭발한다. 이 노래에서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자신을 “한쪽 날개가 부러진 새”로 표현하는 리버스 쿼모는, 자신의 처지를 씁쓸하게 비관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부를 노래들이 남아 있다”고 외치며 현실을 직시하되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를 이어나간다. 서정적인 후렴에 맞물려 잔잔하게 울리는 이런 메세지는 앨범이 다루는 현대 사회에 대한 주제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있음에도 노래를 확고한 정점이 되게 한다.


아쉬운 트랙들도 더러 있다. 피아노를 치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모습을 그린 “Playing My Piano”는 변칙적인 전개와 비극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나 훅이 너무 약한 편이고, 가사도 그렇고 중세적인 분위기를 묘사하는 “Dead Roses”는 그 분명 흥미로우나 아쉽게도 큰 흔적을 남기지는 못한다. 엔딩 트랙 “La Brea Tar Pits”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엔딩 트랙치고는 임팩트가 약한 데다 앨범을 다소 성급하게 종결하는 느낌이 있다. 오히려 그 앞에 있는 또 하나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풍 트랙 “Here Comes the Rain”이 진정한 피날레처럼 느껴지는 덕분에 훌륭한 스트링 리프에도 불구하고 관객 퇴장 음악처럼 들리는 감이 있다. 24초짜리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과 더불어 인터루드 트랙 중 하나인 “Mirror Image”는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과 멜로디는 분명 뛰어나긴 하나 앨범의 전체적인 내러티브와는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전반부에 비하면 다소 약한 후반부와 함께, OK Human은 새로운 스타일을 훌륭하게 선보였지만 동시에 개별 트랙의 변주가 부족함에 따라 단조로움이 은근히 강하게 느껴진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기타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스트링은 분명 훌륭한 선택이지만 전반적으로 보컬 멜로디에 크게 의존하다 보니 그전의 좋은 위저 앨범들이 지녔던 다채로움은 다소 미미하다. 그래도 다행히 이는 나름의 신선한 방식으로 해결된다. 먼저는 갭리스 기능을 사용해 음반 전체가 (마치 비틀즈의 Abbey Road 후반부처럼) 마치 하나의 메들리처럼 들리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러닝타임을 그들의 스튜디오 앨범 중 가장 짧은 Green에 필적하는 30분에 맞춘 것도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곡 길이를 2분에서 3분 초반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다 가장 긴 “Bird with a Broken Wing”마저 4분이 채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짧게 유지하는 호흡이 오히려 득이 되어 역동성은 적을지라도 감상하는 데 있어 지루함을 느낄 일은 없다.


기존 위저의 스타일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OK Human은 기존의 공식을 깨트리고서라도 여전히 밴드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타를 차마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채 팝을 추구했던 기존의 괴작들과 달리 아예 다른 구성을 갖춘, 더욱 급진적인 모험임에도 음반은 오히려 더 뛰어난 결과물이다. 제이크 싱클레어는 White에 이어서 위저라는 밴드의 매력을 찾아내어 증폭시키는 훌륭한 프로듀서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고, 아날로그의 극한을 달리는 제작과정 속에 만들어진 음악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잡아낸다. 위저가 맞이하는 네 번째 디케이드의 시작은 다행히도 순조로워 보이고, 음반은 언제 또 뒷통수를 칠지 몰라도 일단은 그들을 다시 한번 믿게 만든다.


(원 게시일: 2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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