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b / album by Lana Del Rey
화려함을 줄이고 내실 있는 음악으로 안식을 취할 자신의 세계를 창조했다.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이야기를 품은 작품이다.
한번 정점을 찍은 아티스트라면 당연히 그 후속작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Norman Fucking Rockwell! 같은 음반을 선보인 뮤지션이라면 말이다. 음악에 대한 부담감과 부수적으로 딸려온 각종 논란을 뒤로하고 라나 델 레이가 발매한 신보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에 깃든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소박한 평화로움이다. 2017년의 Lust for Life부터 그녀의 음악의 주된 주제 중 하나가 된 현시대 미국의 이야기에 대한 한탄은 이 앨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작년부터 많은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판데믹에 대한 특별한 언급도 없다. 그전처럼 동시대성을 담아내려고 애쓰는 대신, 라나 델 레이는 새 앨범에서 기존보다 간단한 음악에 맞춰 스스로에 초점을 둔 채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쇳소리 가득 섞인 보컬로 무명 가수 시절에 대한 역설적인 그리움을 표하는 “White Dress”에서 Paradise EP의 오프닝 트랙인 “Ride”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 무리가 아닐 것이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그녀는 도피를 떠나고 있다. (마침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녀는 빈 고속도로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2012년 그녀가 향한 도착지는 아담과 이브만이 존재하는 뇌쇄적이고 치명적인 로맨스가 드리운 낙원이었지만, 9년 후에 라나 델 레이가 자리하는 곳은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노는 공간이다. 앨범의 타이틀 트랙의 내용이 한 줌의 걱정도 없이 순수하게 행복을 누리는 이야기인 것과, 앨범 커버 속 라나 델 레이가 더는 홀로 있지 않고 친구들에 둘러싸여 활짝 웃는 것은 고독감을 떨쳐내고픈 그녀의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음반에서 가장 돋보이는 트랙 중 하나는 “Wild at Heart”다. 전작에 실린 “hope is a dangerous thing…”과 “Love song”, 그리고 “How to disappear”의 멜로디를 조합해 목가적인 분위기로 완성된 곡은 음반에서 가장 생생하게 영화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불타는 세상을 바라보며 바다 위를 항해하던 여인은 이제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다. 풍부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멜로디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라나 델 레이가 운전하는 캐딜락 뒷자리에 같이 앉아있게 된다. 그러나 노래를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녀의 드라이브가 사실은 그녀를 덮치는 명성의 손길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극에 빗대어, 그러나 자신이 사랑받는다면 그것은 스타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열광적인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명세가 낳은 압박감이 만들어낸 문장이겠지만, 이에 가라앉지 않고 라나 델 레이는 희망적인 톤으로 노래한다.
전작과 비교해보면 이번 작품은 확실한 킬링 트랙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운 구석이 있으나, 음반은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타개하려 노력한다. 첫 번째 방식은 한 트랙 내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분위기를 전환 시키는 구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시는 “Dark but Just a Game”이다. 벌스에서는 부드러운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어두운 느낌을 가득 풍기고 있지만, 후렴에서 곡은 밝은 멜로디로 변신하며 인상적인 보컬 하모니가 노래를 아우른다. 아예 다른 두 곡을 하나로 합친 건가 싶을 정도로 이질적인 분위기지만 이러한 변칙적인 전개가 “어둡긴 하지만, 그저 게임일 뿐”이라며 삶의 고난을 이겨내려는 의지적인 가사에 깊이를 더한다. 서정적으로 진행되다 브릿지에서 소울 장르로 짧게 치고 들어오는 “Dance Till We Die” 또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앨범의 후반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상술한 “Wild at Heart” 또한 공허하던 벌스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풍부한 사운드의 후렴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프로덕션 면에서 퍼커션을 상당히 섬세히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의 드럼 아웃트로는 평화롭던 노래의 끝에 어딘가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며 곡을 비틀어버리고, “Tulsa Jesus Freak”의 미니멀한 비트는 라나 델 레이의 노래에서 오랜만에 리드미컬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Dark but Just a Game”의 곳곳을 수놓은 탬버린 소리나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에 놓여 리드하는 “Yosemite” 속 핑거스타일 리프에 맞춘 젬베 연주 등 뻔하지 않은 악기 운용에서는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와 릭 노웰스의 치밀함이 느껴진다. Ultraviolence의 앨범의 강렬한 일렉 기타나 Honeymoon의 구슬픈 바이올린 세션, NFR!의 몽롱한 사이키델릭 기타 톤처럼 단번에 이목을 끄는 요소를 넣는 대신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다는 점이 이번 음반의 특징 중 하나다.
여기에 더해, 앨범은 Lust for Life 이후 꽤 오랜만에 게스트 보컬을 초빙했다. 니키 레인과 함께 컨트리 뮤지션 태미 와이넷의 삶을 토대로 한편의 멜로드라마를 펼치는 “Breaking Up Slowly”는 두 여인이 지닌 음색의 매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라나 델 레이는 조니 미첼의 “For Free” 커버 버전으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한다. 2017년부터 그녀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포크 음악의 전설적인 뮤지션을 향해 동료 음악가 젤라 데이와 와이즈 블러드와 함께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그녀는 점점 더 비극으로 점철되는 이 시기에 더욱 강조되는 여성의 연대를 은은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이 노래의 가사가 무명 가수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힘들던 무명 시절을 그리워하던 첫 트랙 “White Dress”와 완벽한 수미상관을 이루며 순수하던 시절을 향한 그리움으로 음반을 훌륭하게 끝맺는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소 덜어낸 가사의 내용, 그리고 엄청난 파급력을 선보인 전작을 뒤로하고 발매하는 음반이라는 점에서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은 흔히 말하는 “쉬어가는” 작품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화려하진 않아도 치밀한 구성과 전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은 앨범의 내러티브를 생각하면, 이번 작은 그저 힘을 빼고 가볍게 만든 결과물 이상임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쉬어가는 음반이 아니라, “쉬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각종 언론과 Cancel culture가 그녀의 발목을 잡으려 버둥대는 그 순간에도, 이미 라나 델 레이는 자신만의 낙원에서 고고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늘 위의 비행운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원 게시일: 2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