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zer (White Album)

album by Weezer

by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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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와 함께 돌아온 클래식 위저가 나아간 여정의 종착지. 새하얗게 칠해진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그들이 가장 사랑받았던 시절을 추억하는 즐거운 스냅샷이다.

좋은 음반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재료는 무엇일까? 아티스트의 성장 서사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다룬 가사? 혁신적인 프로덕션과 사운드? 혹시 설탕, 향신료, 그리고 모든 좋은 것들? (*파워퍼프걸 패러디) 물론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는 것들이지만, 때로는 이런 요소들이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앨범이 탄생할 수 있다. 그저 캐치한 멜로디와 시원시원한 기타 소리만 가지고도 말이다. 찌질한 감성을 쾌활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담은 위저의 데뷔작 Blue 앨범이 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밴드가 처음으로 컬러 시리즈의 계승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또 하나의 셀프 타이틀 작품, 일명 White는 이러한 공식이 90년대와 00년대를 넘어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음반은 성공적인 귀환의 신호탄이 된, 14년도의 컴백 작품 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의 길을 따르며 초기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 첫 번째는 밴드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릭 오케이섹 대신, Wannabeezer라는 커버 밴드까지 만들 정도로 위저에 대한 팬심을 자랑하는 제이크 싱클레어를 프로듀서 자리에 앉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작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사뭇 진지한 자아 성찰적인 가사 대신 음반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흔히 위저 하면 떠오르는 너드 소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전작이 그룹의 뿌리를 탐색하면서 밴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White는 그중에서 대중이 가장 사랑했던 그 시절의 음악을 마치 셀프 패러디 식으로 열심히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만일 단순히 이런 목표에만 몰두했다면 White는 또 다른 Green 앨범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2001년 셀프 타이틀의 앨범 커버 배경은 흰색이 될 뻔도 했다) 위저는 작품에 입체감을 한층 덧씌웠다. 단색 배경에 멤버들의 사진만이 더해졌던 컬러 시리즈의 규칙에서 살짝 벗어난 커버 아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White는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시공간적 배경 - 여름의 캘리포니아 해변 - 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음반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갈매기 소리도 그렇지만, 활기찬 멜로디 라인과 크게 울려 퍼지는 디스토션 먹인 기타 톤은 여름 바람의 그 선선함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가장 큰 임팩트를 지니는 것은 역시 앨범 발매에 앞서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된 세 트랙이다. “King of the World”의 역동적인 리프와 “L.A. Girlz”의 웅장한 기타 사운드, 그리고 “California Kids”의 산뜻한 멜로디는 데뷔 앨범에 실린 “No One Else”, “Surf Wax America”, “Holiday”와 같은 굵직한 트랙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꿇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확실한 A 티어 킬링 트랙들을 지니면서, 나머지 부분이 빈약하지 않고 탄탄하게 음반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 White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제목에서부터 바다를 항해하는 이야기를 담은 “Wind in Our Sail”의 휘몰아치는 후렴에서는 온몸을 강타하는 시원한 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말랑말랑한 비치 보이스 스타일로 시작한 “(Girl We Got A) Good Thing”에서는 치솟는 기타 솔로 멜로디가 짜릿한 반전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리버스 쿼모가 앨범에서 가장 아끼는 트랙이라고 언급한 “Summer Elaine & Drunk Dori”의 훅이 지닌 중독성 또한 남다르다. 특히 눈여겨볼 점이라면 그의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한 의식의 흐름 작사 기법이 이 곡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는 사실인데, 중간중간 삽입된 뜬금없는 문장들을 통해 자신의 곁에 있던 여자들의 부재에서 비롯된 화자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음반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맨 끝에 놓인 “Endless Bummer”다. 어쿠스틱 기타로 차분함을 유지하다 일렉 기타 사운드가 후반부에 이르러 터져 나오는 곡인데, 데뷔 앨범의 “Only in Dreams”와 Red 앨범의 “The Angel and the One”과 훌륭한 엔딩 트랙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특히 리버스 쿼모의 현란한 기타 솔로는 바로 전작의 “Futurescope Trilogy”와 비교했을 때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탁월한 연주다. 그리고 이는 비단 사운드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적으로도 훌륭한 엔딩 트랙이다. 앨범의 가사를 훑어나가다 보면, White는 캘리포니아에 온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지만 결국 이별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콘셉트 앨범이기도 하다. “그저 여름이 끝나길 바란다”는 침울한 가사는, 시작점에 있었던 무한한 긍정의 메세지와 대비되며 훌륭한 여운을 남긴다.


다만 장점이 크기에 단점도 일부 드러난다. 전작 EWBAitE에 비하면 구성 면에서 약간 혼란스럽게 들리는 것이 그 점이다. Pinkerton을 연상시키는 90년대 스타일의 어두운 “Do You Wanna Get High?”와 피아노가 리드하며 제3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Thank God for Girls”, “Jacked Up”이 음반으로서의 완결성은 살짝 해치고 있다. 물론 곡 단위로 보았을 때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는 곡들이고, 음반 전체가 모두 시원시원한 팝-록 트랙으로 채워졌다면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졌을 여지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일곱 트랙이 유기적으로 정말이지 훌륭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점에서 중간에 등장하는 이런 변주 및 이탈은 다소 과해 보이는 지점이 있다.


디럭스 에디션에 추가로 수록된 트랙들은 반반이다. 나사의 목성 탐사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썼다지만 실상은 트럼프 시대 미국을 풍자하는 가사처럼 보이는 “I Love the USA”는 후반부 기타 솔로를 제외하면 무난한 피아노 발라드라는 점에서, 상기한 곡들과 같이 여기에 있을 필요는 굳이 없어 보인다. Pussy Riot의 Nadya와 Fitz and the Tantarums의 Fitz가 참여한 “Jacked Up”의 난잡한 리믹스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곡이다. 하지만 호감 가는 상대에게 있어 자신은 그저 친구의 친구일 뿐이라고 털어놓는 “Friend of Friend”와 억지 미소 대신 솔직하게 자기를 싫어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마조히즘적인 “Fake Smiles and Nervous Laughter”, 그리고 소심한 사랑 고백 노래 “Prom Night”은 아웃테이크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스탠다드 반에 실려있어도 어색함이 없을 곡들로 잘 짜인 멜로디와 신나는 록 사운드가 잘 맞춰진 곡들이다.


앨범 발매 전 가장 마지막에 공개된, “Thank God for Girls”와 “King of the World”, 그리고 “L.A. Girlz”의 내용이 한데 모인 “California Kids”의 뮤직비디오에서 이 모든 산전수전이 다 자신이 겪었던 일임을 깨달은 리버스 쿼모는 이내 모래사장 아래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낸다. 이것이 곧 White 앨범의 정체성을 그대로 표현해준다 -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행해봤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뛰어난 자기 반영적 작품. 뚜렷한 강점이 있기에 아쉬움도 더러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20년이 넘는 활동 속에 위저는 스스로가 어떤 그룹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 이 뒤로 이어진 꾸준한 일탈에도 그들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싶게 되는 것은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방향성의 확신 덕분이다.


(원 게시일: 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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