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by Weezer
오래 아끼고 아껴두었던 기타 에너지의 대 발산. 폭발하는 듯한 짜릿함까지 이르지는 못하지만, 50줄의 아저씨들이 지금까지 이 정도의 따끔함을 만드는 것도 용하다.
바야흐로 2년 전 가을, 2019년 9월 위저는 그린 데이와 폴 아웃 보이의 손을 잡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 이름 하야 Hella Mega Tour. 세 밴드가 같은 날 공연을 하는 대규모의 스타디움 투어였다. 여기에 필요한 음악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첫 번째, 골수 팬들 보다는 음악을 얕게 즐기는 대중들이 주 타겟이 될 테니 일단은 흥얼거리며 따라부르기 쉬운 친숙한 멜로디. 두 번째, 큰 무대에 걸맞게 관객석을 가득 메울 웅장한 기타 리프. 위저가 투어 일정을 공개하면서 홍보 일환으로 발매를 예고한 Van Weezer는 딱 이런 전략을 따르는 앨범이다.
그들이 앨범 공개에 앞서 먼저 선보였던 싱글들은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화려한 태핑 사운드로 수놓아진 “The End of the Game”은 마치 “이것이 캐치함이다!”라는 구호를 힘껏 외치는 듯한 노래로 2010년대 위저의 싱글 리스트에 훌륭한 마침표를 찍었고다. 앨범 발매 연기 소식과 함께 공개한 “Hero” 또한 신나는 멜로디로 이 청신호를 이어가면서 록 에어플레이 차트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위저는 이 기록으로 네 디케이드에 거쳐 해당 차트 1위를 거머쥔 세 밴드 중 하나로 등극했다) 이 뒤를 이어 영화 <엑셀런트 어드벤쳐 3>의 사운드트랙 버전으로 먼저 공개된 노래 “Beginning of the End”는 휘몰아치는 훅으로 앨범에 대한 기다림을 즐거움으로 만들었고, 가장 마지막에 공개한 “I Need Some of That”은 어린 날에 대한 향수를 머금은 가사와 배배 꼬지 않고 바로 꽂히는 멜로디로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쌓인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일까, 오랜 기다림 끝에 공개된 Van Weezer는 연초 기습 발매된 OK Human이 남겼던 파급력과 비교했을 때 어딘가 미적지근하다. 밴드의 2010년대 커리어를 빛낸 두 작품 EWBAitE와 White에서 선공개 곡들 못지않게 뛰어났던 나머지 트랙들을 생각하면 위저의 신보에서 남겨진 트랙들은 대체로 무난함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2005년 히트 싱글 “Beverly Hills”처럼 퀸의 “We Will Rock You”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쿵-쿵-짝 비트를 차용한 “All the Good Ones는” 애매한 속도감으로 초반부터 분위기의 가열을 한 템포 늦춘다. “좋은 이들은 모두 떠나버렸지”라는 가사가 세상을 뜬 록 뮤지션들에 대한 경의였다면 정서적인 파동이라도 크게 쳤겠지만, 내용이 담고 있는 것은 뻔한 사랑 이야기다.
광란의 파티 속 약에 취하는 내용의 “1 More Hit”은 난데없는 브레이크 다운 파트와 “Pump it up into me, please daddy”와 같은 다소 당황스러운 가사로 충격요법을 시도하지만 가장 중요한 후렴이 크게 치고 올라오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She Needs Me”는 투박한 훅이 별다른 매력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고, 어쿠스틱 기타가 곁들여져 Hurley의 엔딩 트랙인 “Time Flies”를 떠오르게 하는 마지막 곡 “Precious Metal Girl”은 그 노래가 그랬듯 밍숭맹숭하게 앨범을 끝낸다. White 앨범의 “Endless Bummer”처럼 짜릿하게 치솟는 기타 솔로 같은 반전을 기대했으나 현실의 결말은 다소 허무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Wyld Stallyns Edit”으로 먼저 선보인 “Beginning of the End”의 오리지널 버전이다. 인트로를 장식하는, 마치 불시착한 타임머신 같은 요란한 소리와 조금 연장된 벌스, 어딘가 노래를 급하게 끝내는 듯한 아웃트로까지 노래가 구조적으로 어수선하다. 멜로디나 전반적인 사운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곡의 전개가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니, 곡에 제대로 이입하기가 영 어렵다. 트랙리스트가 가지는 문제도 있다. 본래 오프닝 트랙으로 박혀 있던 “The End of the Game”과 세 번째 트랙이었던 “Hero”가 최종적으로는 자리를 맞바꿨는데, 당연히 앨범의 문을 여는 곡으로 만들어진 듯한 노래가 뒤로 밀려나니 흐름상 초반부터 끊기는 듯한 감상을 받게 된다. 일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변경 전의 순서대로 들을 수 있지만, 공식적인 오프너로서 “Hero”는 그 힘에서 확연히 부족함을 드러낸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가운데 앨범에서 눈에 띄는 트랙을 고르자면 첫 번째는 “Blue Dream”이다. 오지 오스본의 “Crazy Train” 속 박진감 넘치는 기타 리프를 샘플링한 이 곡은 시원시원한 속도감과 뻔한 멜로디를 따르지 않는 후렴으로 독보적인 분위기를 머금고 있다. 난데없이 해양생물들을 언급하는 가사가 우습긴 하지만 음악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레 이 유치함은 잊게 된다. 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Sheila Can Do It”은 친근한 멜로디로 후반부 트랙 중에서는 가장 큰 중독성을 남긴다. 다소 밋밋한 싱잉-랩 파트에는 아쉬움이 따르나 길게 흘러가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노래를 조절한다. 그리고 보너스 트랙으로 일부 제공된 “I’ve Thrown It All Away”는 위저의 명곡들은 B 사이드라는 말을 그대로 따르는 케이스다. Blue 앨범의 “Only in Dreams”를 떠오르게 하는, 다소 무겁게 가라앉은 베이스 라인과 기타 멜로디가 지금과는 달리 웃음기를 싹 뺀 초기 위저의 비범한 곡들과도 겹쳐 보인다.
아마 원래 계획대로 앨범에 1년 전에 나왔더라면 위에 늘어놓은 쓴소리의 농도는 다소 옅었을 것이다. 사실 위저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한 게, 본인들의 의지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발매를 미춘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완성된 상태에서 매니지먼트에 의해 투어와 맞추기 위해 미뤄진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본래 기획에는 없던, 밴 헤일런의 사망으로 인해 졸지에 일종의 트리뷰트 앨범이 된 것도 한몫했다. 그래도 이렇게 의도치 않게 모인 하이프를 최대한 빼고 본다면, Van Weezer는 31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충분히 즐길 만한 구석을 지닌 작품이다. 밴드를 아예 재창조한 OK Human이 워낙 수작이었던 탓에 그냥저냥 범작 수준이긴 하지만 애초에 거창한 모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용인해줄 법하다.
헤비메탈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채 본인들의 파워 팝 작법의 틀을 아예 벗어난 Maladroit라는 선례가 이미 존재하기에 태생적으로 그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겠지만, 그럴 때는 음반 제목을 다시 들여다보자. Van “Weezer”. 조금 더 강렬한 사운드로 포장되어있을 뿐이지 위저는 애초부터 또 하나의 “위저” 앨범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비슷한 의도였겠지만 셀프 패러디에 힘을 쏟다 몰개성의 늪에 빠져버린 Green을 생각하면 Van Weezer는 훨씬 알찬 편이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지만, 이제는 다들 50대에 이른 밴드가 열다섯 번째 앨범에서조차 본인들의 음악을 여전히 명확하게 직시하고 있다는 것 또한 능력이라면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