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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 Oct 13. 2021

Glad He's Gone

song by Tove Lo

가끔 듣긴 했지만, 토브 로의 음악에 깊게 빠져드는 것은 내게 있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어쩔 수 없는) 남성의 입장에서, 그녀의 표방하는 여성주의적 내러티브가 살짝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겠고, 일단 음악 자체가 자주 듣기에는 좀 과한 타입이었다. 퇴폐적인 콘셉트와 다분히 노골적인 가사, 그리고 몽롱하면서 마약에 잔뜩 취한 느낌을 내려는 듯한 신스 텍스쳐 등이 진입장벽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녀를 다시 보게 했다. 듣기 편한 소프트 기타 리프와 복잡하지 않은 리듬, 그리고 비교적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은 보컬은 노래를 쉽게 질리지 않고 꾸준히 들을 만한 트랙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남자들에 대한 한심한 시선과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가사는 꽤나 직설적인 편이다. 하지만 과거 “Cool Girl”이나 “disco tits” 같은 싱글에서 이른바 “거리낌 없이 원 나잇 스탠드와 술, 마약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여념 없던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 발짝 벗어나니, 그녀가 화살촉을 겨누고 있는 반대 성별의 입장에서도 오히려 듣기 편해졌다. 마치 칼리 레이 젭슨의 “Boy Problems”에 대한 답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그 노래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시아의 캐릭터를 그녀가 연기하고 있는 기분이다. 토브 로가 완전히 본인의 개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남자 하나는 별로잖아. 밤새 춤추고, 새로운 남자들 번호 따자고.” 그래도 그녀가 맑은 정신상태로 밤의 즐거움을 계획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원 게시일: 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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