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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 May 26. 2024

01 우당탕탕 MZ신규교사 이야기

01. 시골쥐의 서울 상경기

- 집찾기

 2월 말, 발령을 받았다. 3월부터 출근을 하기위해 내게 집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일주일. 대학도 새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터라 서울에서 자금 측면에서, 치안 측면에서도 안전하고 저렴한 가격에 발령받은 학교와 가까운 집을 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늘 아주 작은 공간의 기숙사 또는 원룸에서 살았던 터라 조금 다른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큰 집에 가고싶었지만, 사실 그것은 원대한 꿈이라는 걸 첫번째 방에서 부터 알게되었다. "지금 원룸 매물이 없어~, 있는방 일단 보여줄게~ 1억에 50이야" 라는 중개인의 말에 '헉! 1억??? 나한테 1억이 어딨지?? 근데 방은 엄청 좋겠지?' 라는 생각으로 집을 보러갔다.

 약 45도 이상의 경사진 골목길을 헉헉대며 올라가고 빨간 벽돌집의 꼭대기에 끙끙대며 올라갔더니 옥탑방 느낌의 낡은 원룸이 나타났다. 이게 보증금 1억짜리라니.. 역시 서울은.. 어렵구나 싶었다. 애초에 학교 근처에 집을 잡는다는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 외곽으로 빠져보기로 했다. 아버지와 함께 아무 부동산이나 막 들어가며 집을 찾았다. 이번엔 5000/60 짜리였다.

 1층에 정육점, 2층에 노래방과 함바집, 3층에 원룸들이 모여있었다. 그래도 60이면 월급의 약 4분의1이상이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집을 보았다. 1층과 2층에서 올라온 악취와 2명이 누우면 꽉차는 방. 정말 서울로 임용고시를 본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여기서 살바에는 아예 지방에서 통학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 부동산에서 커피한잔을 하고 있던 때, 괜찮은 매물이 저기 멀리에 하나 나왔다고 부동산 아저씨가 말씀해 주셨다. 한 30분을 거의 언덕하나를 넘어 갔는데, 서울에 이런곳이 있나? 싶었던 곳이었다. 학교랑도 여러번 갈아타야하는 곳이었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나와의 합의를 보았고, 결론적으로 그냥 그곳에 살기로 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계약을 하고, 거의 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뭐 햇빛도 안들고, 방음도 잘 안되고, 낡은 동네였지만, 따신물 나오고, 사람 5명정도는 누울 수 있고, 반지하나 옥탑이 아닌게 어딘가? 게다가 저렴하다! 보증금도 1000안쪽으로 저렴하다! 그냥 젊으니까 견디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그곳에 1년이 넘게 살고있는데, 음... 가끔 출몰하는 바선생만 아니면, 나쁘진 않다!

 - 지옥철

 험난한 집구하기가 끝났더니, 다음 라운지는 출퇴근 지옥철을 견디는 것이었다. 늘 학교 바로앞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애초에 탈 것을 타고 어딘가 매일매일 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 내가 출근해야 하는 고등학교는 7시반~ 7시 40분 정도에는 도착해야 7시 50분에 시작되는 조례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한시간이 걸리는 나는 적어도 6시 반정도에는 슬슬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에 씻고 화장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5시반 정도에는 기상해야한다. 대학시절에는 6시에만 일어나도 '미라클 모닝'이라고 유난을 떨었는데, 5시 반에 강제로 미라클 모닝을 하게된 심정은? 참담했다. 특히 여름이 아니면 보통 해가 떠있지 않는데, 그때, 지하철까지 걸어가고 있노라면 정말.. 현타도 그런 현타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다. 나는 경전철과 메인호선, 버스까지 타야 학교에 도착하는데, 3개 다 극악 무도한 인구밀도를 자랑한다. 우선 경전철은 두칸밖에 없다. 늘 그 전철에 탈때는 가슴 앞에 손을 크로스 하여 내 소중한 생명을 지키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리고 메인호선, 약 10개의 역을 통과해야하는데 뭐 이건 지루함만 잘 견디면 된다. 가끔 정말정말 사람 많을 때가 있긴한데.. 괜찮다 그 중간에 갈아타려고 우르르르 내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난 이제 그 역에서 내리는 사람의 관상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그 때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 버스는 학생들과 함께 끼어서 온다. 아이들이 끄덕끄덕 인사하는걸 받아주다보면 어느새 도착이다. 사실 타기 싫거나 버스가 안오면 그냥 10분정도 걸으면 된다. 이제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몸에 배어 익숙해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처음에는 출근도 하기 전에 기가 빨렸지만, 이제 그냥 후루루룩 가면 어느새 도착해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어쩌면 학교와의 이런 거리감이 나를 집에서 더 푹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 포화 상태

  서울에 가기 전, 내가 생각한 서울은 무섭기도 하지만, 많은 인프라와 편리한 교통, 내가 원하는 시각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소비의 도시였다. 아 이제, 나는 발품을 팔지 않아도 소비가 가능한 곳에 살겠구나. 행복했다. SNS에서만 보던 빵집, 마X컬X와 쿠X의 새벽배송, 남산뷰가 좋다던 해방촌, 팝업스토어가 많다던 성수, 낭만있는 한강 달리기, 서울에만 열리는 페스티벌,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의 번개 만남.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었다. 시간도 있었고, 넉넉하진 않지만 이전보다는 돈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이전 같았다면 정말 행복했을 시간들, 정말 아름다웠던 공간들, 정말 맛있었던 음식들이 이제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들, 어딜가나 있는 지루한 공간들, 뻔하고 비싸기만 한 음식들로 느껴졌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배고파야 맛있는 법이다. 적절한 결핍이 채우는 즐거움을 주는 법이다. 이것이 서울살이 1년차인 내가 포화상태인 나에게, 포화상태인 서울에게 말하고 싶은 말이었다. 풀소유의 도시에서 적절한 결핍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적절히 채워넣는 것. 이것이 내가 찾고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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