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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하나님을 믿는다구?

엄마의 믿음생활

by 우먼파워

"엄마가 하나님을 믿는다구?"

믿기지 않는 엄마 말에 나는 의심부터 했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었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에 엄마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엄마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더없이 진지했다.

내가 처음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우리 동네에는 교회가 없었다. 목사도, 전도사도 없는 시골 마을에 어느 날 젊은 여자 전도사가 부임해 왔다. 그녀는 우리 아랫집 사랑채에 방을 얻어 살며 마당에 아이들을 불러 모아 짚을 깔고 예배를 드렸다. 찬송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예배가 끝나면 하얀 눈깔사탕을 나눠주었다. 감자와 고구마 이외에 딱히 간식이랄 것이 없던 때 눈깔사탕 하나는 그야말로 천국을 맛보는 듯 달콤했다. 나는 그 사탕을 얻기 위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의 전도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처녀의 몸으로는 더더욱. 2년을 버티던 전도사님이 결국 마을을 떠나자 우리 동네는 다시 예배 없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산 밑의 작은 공터에 교회가 세워질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교회가 완성되었고, 젊은 남자 전도사님이 부임해 오셨다.


나는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전도사님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방문전도를 다녔고 내 친구 선희 아빠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부흥되어 갔다. 교인이 된 동네 사람들은 매주 모여 속회 예배를 드렸다. 혼자 있는 전도사님을, 교인들은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엄마와 아버지는 관심이 없었다. 시간 뺏기는 짓을 왜 하느냐는 생각이셨고 산 사람 믿기도 힘든 세상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를 어떻게 믿느냐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았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며 밤늦게까지 율동을 연습하고, 연극과 성경 암송을 외웠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발끝을 세우고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가던 날도 많았다.


그렇게 교회를 싫어하고 믿지 않는 분들이었지만 인심이 후한 천성이시라 크리스마스날 새벽에 새벽송을 도는 교인들에게는 늘 사탕이나 과자를 사두었다가 나눠주시곤 했다. 추운 새벽에 믿지 않는 집에도 찬송을 부르며 축복을 빌어주는 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여겼다.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두 분의 평소 생활신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였다. 교인들은 점점 늘어갔지만, 엄마와 아버지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이것은 이변 중에도 대이변이었다.


아버지는 늘 속이 쓰리다고 하셨다. 약을 먹고 병원을 다녀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찔러대는 주사 때문에 아버지 엉덩이에는 주삿바늘 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었고 걸을 때마다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통증으로 힘들어하셨다. 절박한 엄마는 결국 점쟁이를 찾아가 굿을 하기로 했다. 우리 형편으로는 꽤나 부담스러운 돈을 지불하고 아버지 몰래 푸닥거리를 진행했다. 굿을 하던 날 엄마는 목욕재계를 하시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가셨다. 그리고 돌아오실 때는 과일과 떡을 한 아름 안고 오셨다. 하지만 굿을 하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졌다. 들인 돈이 아까웠지만 아버지 몰래 단행한 것이라 엄마는 말도 못 하고 속앓이만 해야 했다. 결국 아버지는 위궤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엄마는 또 굿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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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삼성동으로 이사 온 뒤, 엄마는 아랫집 아주머니와 친해지며 그녀의 권유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셨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를 해보라며 엄마를 설득했고 엄마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 문을 열었다.


"나 이번 주부터 교회에 갈 거야."

"뭐? 엄마가 교회에 간다고? 하나님을 믿는다구?"


나는 엄마 말을 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 되물었다.

그 후로 엄마는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자신의 전부를 쏟아 아버지의 위궤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함께 침례를 받으며, 다시 신앙을 이어갔다. 엄마의 기도와 정성 때문인지,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건강을 되찾으셨다.


엄마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던 분이었다. 항상 가족이 우선이었고 자신의 행복을 늘 뒤로 미루었던 엄마의 삶. 그 헌신은 때로 고단함으로, 때로 외로움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내색하지 않았다. 늘 강인하고 꿋꿋한 모습으로 우리를 지탱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뒤 엄마의 삶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기도로 하루를 열며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하셨다. 엄마의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다짐이었고,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었으며,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였다. 엄마의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가족을 지키셨다.


엄마의 믿음은 말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알게 모르게 큰 힘이 되었고 덕분에 우리 가정은 더욱 평온해질 수 있었다. 엄마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위로의 하나님, 치유의 하나님이었다. 엄마가 믿음으로 보여준 삶은 내가 진심으로 닮고 싶은 삶이다. 사랑과 희생으로 가득 찬 삶,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 엄마가 품었던 그 평안을 나도 내 마음에 품고 싶다. 엄마가 닿았던 그 사랑에 나도 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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