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세월, 같은 물길 위에서

해양수산과학관

by 우먼파워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이 유난히 애처로워 보였다. 물기만 대충 털어낸 머리카락은 서리 맞은 듯 하얗게 바래있었고, 굵고 강했던 머리털은 옥수수알 빠지듯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모습은 이제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이 아저씨, 언제 이렇게 늙었지. 어느새 할아버지가 다 되었네.’


세월의 폭탄을 나만 맞은 줄 알았는데 그도 같이 맞고 있었다. 젊은 날의 힘찬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굽고 힘없는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그이의 어깨 위로 세월의 무상함이 내려앉았다.


손가락으로 꼽아도 스무 해는 훌쩍 지난 일이었다. 아이들이 아직 꼬물꼬물 걷던 시절, 소풍 삼아 함께 찾았던 코엑스 아쿠아리움, 작은 등 가방에 간식을 챙겨 들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들어섰던 그날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거대한 수조를 처음 본 아이들은 좋아서 팔딱팔딱 뛰었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시선을 쉬 떼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고, 우리의 세월 또한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금, 그날의 행복한 추억을 더듬고 싶었다.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 듯, 해양수산과학관의 수조 앞에 서니 푸른 곡선을 따라 물고기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전갱이와 참돔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었지만, 생김새도 색도 전혀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 셀 수없이 많았다. 누군가는 재빠르게, 누군가는 느릿하게 원통형 수조 안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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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결의 리듬이, 사람마다 다른 삶의 호흡을 닮아 있었다. 어떤 이는 앞만 보고 달려가고, 어떤 이는 잠시 멈춰 천천히 길을 이어간다. 빠르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뒤처지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늘 앞서가야만 잘 사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며 그저 속도를 유지하는 데만 몰두했다. 멈춰 선 이들을 보면 답답했고, 천천히 걷는 사람을 보면 이유 없이 안달이 났다. 내 잣대로 세상을 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함부로 판단했다.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 알지도 못한 채 앞서가려고만 발버둥을 쳤다. 그러는 사이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려앉고, 허리는 조금씩 굽어갔지만, 돌아보니 우리는 결국 같은 물길을 따라 이만큼 흘러와 있었다. 속도는 달랐지만, 도착한 자리엔 다르지 않은 시간이 고요히 쌓여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믿기지 않을 만큼 느리게 흐르는 이 유영이 유난히 여유로워 보였다. 급하지도, 그렇다고 뒤처지지도 않는 그 모습을 보며 알았다. 삶은 목적지에 닿는 일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나아가듯, 인생도 멈춤과 움직임이 번갈아 찾아온다. 오늘의 나는 그 느린 속도 안에서 또 나를 돌아보았다. 속도에 쫓겨 놓치고 지나온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세월의 물결 위에서 하나둘 또렷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보다, 무언가를 온전히 느끼는 삶이 더 단단하다는 생각이 내 안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여행도 삶도 격룩은 느림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빨강, 노랑, 회색, 보라… 내가 아는 색의 이름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수백 가지 빛이 수조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색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결 위로 아른거리는 그 빛들은 내가 알지 못했던 바다의 또 다른 얼굴이었고, 동시에 오래전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하나둘 깨워내고 있었다.


체험 수족관에선 아이들이 북적였다. 작은 손으로 먹이를 내밀자, 물고기들이 제비 새끼처럼 오물오물 받아먹었다. 사방으로 물이 튀고 놀란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오며 수조 앞은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 닥터 피쉬 체험장 앞에서는 더 큰 소란이 이어졌다. 손 끝에 와 닿는 미세한 입질에 아이들은 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 짧은 순간, 아이들의 세상은 온통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미끈한 촉감과 손끝을 간질이는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 반짝이며 흩어졌다. 내가 20여 년 전 경험했던 수족관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하듯이, 오늘 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어 남을 것이다.


2층 전시관에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들의 시간이 머물러 있었다. 거칠게 갈라진 손끝에는 파도의 세월이 배어 있었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엔 바람과 함께한 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닳아버린 배와 그물, 색이 바랜 사진들은, 말없이 바다의 기억을 전하고 있었다. 첨단 기술과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에도, 그들에게 바다는 여전히 삶의 근원이자 마음의 품이었다. 파도에 몸을 맡기듯 하루를 건네고, 다시 그 바다로 돌아오는 삶, 그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된 생계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다.


그들의 삶이 내게 말해주는 건 단순했다.


‘오래 바라보고, 묵묵히 기다리는 법.’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시간을 거스르기보다 흐름에 순응하며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조급해하거나 서두른다고 해서 파도가 먼저 밀려오는 일은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몸으로 배워왔다. 기다림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문득 내게 묵직한 깨달음을 전넸다. 삶도 바다처럼 흘러야 한다는 것, 거슬러 오르기보다 흐름 속에서 제 속도를 찾는 일이야말로 오래도록 단단히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해양오염과 자원 고갈에 관한 전시는 다소 무겁게 다가왔다.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얽힌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마지막 희망의 불씨처럼 다가왔다.

해양수산과학관은 내게 바다를 보여준 곳이라기보다, 바다와 마주하게 한 공간이었다. 단순히 파도와 어로 도구를 전시한 곳이 아니라, 바다의 숨결과 사람들의 삶을 함께 느끼도록 만든 자리였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곳, 그리고 바다와 삶의 리듬을 조용히 내 안에 새기는 곳이었다.

수조 속 물고기들이 묵묵히 제 길을 유영하듯, 나도 내 속도로, 내 물길을 따라 흘러가기로 했다. 누구보다 빨라야 할 이유도, 더 멀리 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나답게 흐르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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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 1층 휴게소에서 아픈 다리를 잠시 내려놓았다. 커다란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해변으로 나갔고 동글동글한 몽돌이 발끝을 간질였다. 그 사이로 누군가 정성스레 쌓은 돌탑들이 줄을 맞추듯 서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쌓았을까 생각하며 나도 돌 하나늘 올렸다. 한 층, 두 층, 세 층, 네 층. 더 이상 쌓을 수가 없었다. 십 층 이상 쌓은 돌탑에 비해 내가 쌓은 탑은 너무도 초라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롯이 내 마음이 닿는 순간을 느꼈다.


단순한 돌쌓기 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더 큰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행복의 기준은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었다. 작고 앙증맞은 몽돌들을 보니 주머니에 몇 개쯤 넣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곧 ‘몽돌의 반출을 금합니다.’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마음을 품은 건 아니었나 보다.


작은 돌 하나에도 마음이 끌리고, 잠시라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정말 소중한 건 돌이 아니라, 그 돌을 바라보며 느꼈던 마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바람과 파도 소리, 그리고 감탄하며 바라보던 바다를 마음속에 담았다. 붙잡지 않아도 기억되는 것이 있고, 머물지 않아도 함께한 순간이 있다. 어쩌면 진정한 소유란 끝까지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고도 마음으로 간직하는 법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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