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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퇴사 준비생의 이직 후 상담일지

by Hana

벌써 10번 중 5회기, 반이나 왔다.

사실 지난 번 미스 커뮤니케이션으로 한 번을 날렸다. 상담을 계속 해야 할지 긴가민가했다. 처음에 궁금했던 tci 성격기질검사를 받고 나서 해석까지 듣고 약간 김이 빠졌다고 할까나. 물론 새롭게 다시 알게 된 것도 있었지만 뭔가 내가 계속 내 안에 답이 있는데 그걸 확인 받고 싶어서, 자기 확신이 부족해서 이러는 건가 싶었기 때문. 게다가 이정도면 마음이 건강한 편이라고 해서 과연 지금 나에게 상담이 필요한가? 고민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한 달 전만해도 퇴사 준비생이었는데, 지금은 이직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어서다. 오늘은 전 직장 vs 현 직장에 대한 비교를 하면서 현 상태에 대한 진단을 내리는 시간을 가졌다. 제일 크게 와닿는게 환경의 차이였다. 이전 직장에서는 비슷한 일을 함께 하는 동료가 있었다. 팀이 있었고 팀원들과 공동의 작업물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었다. 나는 혼자 일하는 성향일 수도 있지만 재미는 솔직히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온다. 그만큼 반대 스트레스도 크지만. 그래서 첫날부터 이직한게 잘한게 맞나 싶었다. 같은 팀끼리 다니고, 개인 플레이 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속한 팀이 새로 생긴거고 팀원도 대표, 기간이 2개월 남은 인턴이어서 이전에 짝꿍처럼 잘 맞는 동료를 기대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첫 날에 당황하고 첫 주까지 본의아니게 친구나 동생한테 징징거렸다. 그동안 나 일 재미로 다녔나봐. 먹는 재미랑 떠들고 노는 재미로.. 그니까 같이 웃을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한동안 미안한 마음에 이직 사실을 말하지 못하다가 전 직장 동생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서 이실직고했다. 물론 그 동생도 마찬가지. 서로 웃고 떠들고 맛있는거 먹으면서 같이 뒷담화도 하고 이러면서 힘든 시간을 버텼던 사이인데 더 이상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인간적으로도 나와 잘 맞고, 또 나를 좋아하고 많이 도와준 친구라 더 고맙고 떠나기 아쉬웠다. 그리고 그 때는 그의 열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긴 했는데, 멀리 떨어져보니 일에 진심이고 좋아하는 친구랑 일한다는 게 소위말해 최고의 복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튼 이런 이야기를 초반에 하다가 어쨌든 지금 현재 있는 곳의 만족도가 전보다 1~1.5점 더 높다고 결론 내리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바로 생각이 많은 나 이대로 괜찮은가?

난 생각이 많다. 이래 저래 손금부터 타인의 피드백을 통해 인정하게 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걸 내가 아킬레스건이라고 말을 하자 상담사님이 잡았다 요놈!처럼 왜 그걸 부정적으로 보는지 연유를 물었다. 고민고민하다가 답을 낸게 비교였다. 실행을 잘하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생각이 많고 행동이 느린 내가 별로라고 느꼈다. 그래서 발등에 불 떨어질 때까지 미뤄서 결과적으로 남한테나 나에게 피해를 끼친게 있나? 하면 딱히 생각이 안났다. 남한테 피해주는 건 또 죽기만큼 싫어하는 성격 탓에 그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킨 적은 없던거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남일에 더 먼저 신경쓰는 게 좀 맘에 안들지만 말이다.

그래서 생각 많은 나=안좋아, 이것 또한 나의 그릇된 판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역시나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게 어렵다는 걸 또 한번 느꼈다. 생각이 많다는 건 신중하고 어떤 면에서는 준비를 많이 하고 시작하면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건데 말이다. 나를 아는 것도 좋지만, 이런 나에게 친절하자!

보통 사람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나? 나 또한 계획적이고 기록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내가 계획적으로 일을 처리한 적이 있었는지 물었을 땐 일 말고 딱히 계획적으로 무엇인가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급하면서 중요한 일을 쳐내면서 살아온거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했더니 이미 다 방법은 알고 있다. 단지 실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이어리에 할 일 리스트를 만들고 우선순위를 메기고, 데드라인을 정해서 매일 체크를 하는 것이다. 기록이든 계획표든 내가 뭔가 계속 꾸준히 해냈다는 소소한 성취감을 얻어야 이걸 끝까지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건데 그게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시간을 잡아 이번에는 실행하자고 약속을 했다. 내가 정한 시간이다. 일요일 8시에 한주의 계획 세워보고 매일 잠들기 전 10시에 점검하는 식이다.

김 빠졌던 상담 시간이 될 뻔하다가 질문을 통해 나를 다시 한번 깨우치고 실행하게 될 용기도 얻게 된 시간을 가졌다. 달리기도 중간 쯤 달려왔을 때 힘이 빠지면서도 벌써 반이나 왔네 하면서 다시금 남은 반을 위한 힘도 생긴다.

인생을 어쩌면 지금 36에서 반이나 왔을 수도 있을 시점에서 성장하고 싶어하는 나를 위해 필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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