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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을 대하는 마음

by Hana

13년간 기자로, 19년째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동진 평론가의 인터뷰를 보고, 그의 일에 대한 태도와 철학에서 얻은 깨달음을 적어본다.

처음엔 그의 겸손함이 놀라웠다. 해박한 지식과 논리정연한 말솜씨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회사 부적응자"이자 "실패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모습이 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50분간 그의 일에 대한 관점을 들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변화하는 욕망과 유연한 자세

인간의 욕망은 변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흔히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하지만 나 자신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그 생각은 계속 바뀐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10년 후에도 여전히 좋아할까? 글쎄올시다. 나의 욕망은 변하기 마련이고, 10년 후엔 다른 것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답을 확정짓기보다 넓은 관점에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나 스스로를 가두지 말자.

직업적 권태와 포기의 습관

이동진 평론가는 본인의 강점 중 하나로 "직업적으로 권태를 적게 느끼는 편"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연애 감정이 2년이 최대라는 말처럼, 나도 일을 그렇게 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의 내용보다 일의 환경에 절망했던 것은 아닐까? 자발적 퇴사의 이유가 어쩌면 통제력 상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 직장 상사가 남긴 "포기도 습관이다"라는 말에 찔린 적이 있다. 더 나은 선택, 더 좋은 환경을 찾기 위한 결정이라고 자위했지만, 사실은 내 힘으로 개선할 여지가 안 보여 다른 곳을 기웃거린 건 아닐까 회고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은 기본적인 일처리가 대부분이고, 뻔하고 반복적인 일을 잘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도 그저 노동환경의 특성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에 엄청난 의미부여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 일이 힘든 건 당연한 것이고 뻔하고 반복적인 일이 대부분인 사실을 인정해야 겠다. 그저 맡은 바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운이 좋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살겠어~"라는 마음가짐으로 가볍게 생각하자.

비관주의자의 일 잘하는 법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힌트도 얻었다. 나도 이동진 평론가처럼 다소 시니컬하고 비관적인 면이 있다. 그동안 '긍정적인 게 최고'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나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고 스스로 세뇌했다.

하지만 내가 태생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습관이 있다면, 이것을 일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될 리가 있나?"라는 생각으로 기대치를 낮추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힘이 생긴다. 기대치가 낮으니 만족도는 오히려 높아지고, 그 결과 잘 되는 확률도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이 운이라고 가정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노력뿐이다. 당연히 노력은 디폴트로 해야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가볍게 바라보는 자세를 갖자.

일과 삶, 그 경계에서

이전 직장을 떠난 이유 중 하나는 "이 일을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야근과 긴 출퇴근 시간으로 생각할 에너지조차 없다가, 잠시 한 발 떨어져 바라봤을 때 비로소 나를 이해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워라벨이라는 말에 대한 해석도 재밌었다. 단어 자체에서 이미 워크와 라이프를 분리하고 있지만, 이동진 평론가는 이 둘이 사실상 구분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서 보통 2/3로 가장 많은 시간을 일에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힘든 시간 속에서도 즐거움과 보람을 찾아야 한다. 일하는 순간에 행복해지려 노력하고, 일할 때 나의 상태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보통 일을 잘 마무리했을 때의 성과와 뿌듯함이 일을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또한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통제력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결국 이런 자기 통제력이 있어야 스스로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어"라는 느낌이 들고, 그래야 일을 마무리했을 때 성취감도 느끼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보다 내가 주도권을 쥐고 일할 때 훨씬 의미도 있고 지속할 힘도 생기는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이런 생각들 덕분에 나도 앞으로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지 많은 힌트를 얻었다. 나처럼 좀 비관적인 사람도 "뭐 잘될 리가 있나~"하는 낮은 기대 속에서도 꾸준히 해나가면서 나만의 통제력과 작은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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